“갑자기 열만 나지 않아도 하나 더 낳을 수 있겠어.”
대학 졸업 직후 결혼해 남편을 따라 지방으로 내려가더니 연년생을 낳아 키우느라 10년 가까이 얼굴을 못봤던 동기를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이런저런 근황을 나누다 “아이를 키울 때 가장 힘든 순간이 언제였냐”고 물으니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밤에 열 날 때”라는 답변이 돌아오더군요. 며칠 전에도 오후 내내 별다른 증상이 없었다던 둘째가 퇴근 직후 열이 올라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는 말을 들으니 소아청소년과 오픈런을 체감할 수 있었습니다. 해열제를 먹여도 체온이 내리질 않아 발을 동동 구를 때 즉각 아이를 데려가 진찰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아쉬운대로 15일 밤부터 적용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개정안이 병원 문닫는 시간이 지나 퇴근하는 워킹맘들의 숨통을 트여주길 기대해 봅니다.
코로나19 기간 한시적으로 허용됐던 비대면진료는 올해 6월부터 시범사업 체제로 운영 중인데요. 섬·벽지 등의 의료취약 지역이 아니라면 한달 이내(만성질환자는 1년 이내) 진료를 받았던 병원에서만 비대면진료가 가능했죠. 다만 한달 이내 동일한 증상으로 아이의 진료를 받은 적 있어야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다는 까다로운 조건이 있었습니다. 대다수 맞벌이 부부들은 아이가 갑자기 아프더라도 비대면진료의 혜택을 보기 힘들었습니다.
정부는 시범사업 시행 6개월을 맞아 비대면진료 시행 기준을 대폭 확대하기로 했습니다. 현장의 애로사항을 받아들여 △평일 야간(오후 6시~다음 날 오전 9시) △주말(토요일 오후 1시~다음 날 오전 9시) △일요일을 포함한 관공서 공휴일에는 과거 진료 이력과 관계 없이 비대면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전면 허용하기로 했죠. 코로나19 기간 비대면진료 플랫폼 이용 경험이 있는 분들이라면 잠들어 있던 앱을 다시 깨워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갑자기 아파 난감한 순간은 예고 없이 찾아오니까요.
비대면진료 플랫폼들은 일제히 정부의 시범사업 변경 조치를 앱에서 공지하고 있으니 참고해 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다만 전문의약품 처방을 받더라도 수령 과정이 쉽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의약품 배송 과정에서 약이 파손 또는 변질되거나 오·남용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처방약 배송 기준은 종전과 동일하게 유지시키기로 했거든요. 섬·벽지 환자나 65세 이상 장기요양등급자, 장애인, 감염병 확진 환자, 희귀질환자에 한해서만 처방약 배송이 가능합니다. 예컨대 비대면진료에 참여하는 의사로부터 “아이 상태가 심각하니 즉각 응급실에 가라”거나 “해열제를 먹이고 푹 쉬게 하라”는 등의 상담을 받고 처방전을 수령했더라도 약국에 직접 가서 의의약품을 수령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 문 연 약국을 직접 찾아가야 한다는 얘기입니다.
비대면진료를 받은 후 약을 타야 하거나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약을 사야 하는데 문을 연 약국이 어디일지 몰라 난감할 때도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포털사이트에서 '휴일지킴이약국'을 검색하면 홈페이지가 나오는데 연중 무휴 약국은 물론 현재 운영 중인 약국을 확인할 수 있거든요. 본인이 거주하는 지역을 중심으로 가까운 약국을 찾으면 약국명과 주소, 전화번호가 안내됩니다. 날짜·시간·지역별 세부 설정을 통한 검색도 가능하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현재 지방자치단체나 정부 지원으로 심야시간대 운영 중인 약국은 전국에 206곳입니다. 다만 심야약국으로 분류되어 있더라도 모두 24시간 운영하는 건 아니니 종료 시간을 확인해야 합니다. 전화로 한번 운영 여부를 한번 더 확인해 보면 더욱 정확하겠죠?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realglasses@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