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의 영장'이라는 단어, 참 익숙하죠. 솔직히 말해 '영장'이란게 정확히 무슨 뜻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어릴적부터 인류는 만물의 영장이라고 외워온 것 같아요. 참고로 영장의 사전적 의미는 '가장 뛰어나 영묘한 능력을 지닌 것'.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자신을 돌아봅니다. 과연 나는 세상에서 가장 뛰어나고 영묘한 능력을 지녔는가...? 겸손해서가 아니라 정말 그런 대단한 존재는 아닌 것 같습니다. 오늘 소개해드릴 책 <탈인간 선언>의 김한민 작가님은 지금 우리가 마주한 위기가 바로 이 지독한 '인간 중심주의'에서 왔다고 보고 있어요. 당연히 이를 해결할 방법은 '탈인간주의'라고 주장하는데요. 과연 어떤 이야기인지, 지구용과 함께 들여다보시죠.
비건, 해양환경활동가, 아마존 공동체 연구자
우선 독특한 이력의 저자부터 소개해드릴게요. 책을 좋아하는 용사님이라면 아마 한 번쯤 <아무튼 시리즈>를 들어보셨을 거에요. <아무튼, 식물>, <아무튼, 친구> 등 다양한 주제로 해당 분야의 '찐 덕후'들을 저자로 모셔 만들고 있는 시리즈물인데요. <아무튼, 비건>편으로 비건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저자(=찐 덕후)가 바로 김한민 작가님이에요.
비건이자 기후·생태 이슈를 다루는 창작집단 '이동시'의 일원이고 해양환경단체 시셰퍼드 코리아 활동가이며 리스본 고등사회과학연구소(ISCTE)에서 아마존 원주민 공동체 관련 연구를 하고 계신 바쁜 분. 특히 오늘 소개해드릴 이 책, <탈인간 선언>을 쓰는 3년 동안은 아마존에서 원주민들과 함께 생활하며 불꽃 연구를 하셨다고! 연구하시면서 한겨레 신문에 기고한 칼럼 '김한민의 탈인간'을 엮어 낸게 바로 <탈인간 선언>입니다.
인간이 생각하는 세계의 ‘위계 질서’…과연 불변의 법칙일까
자 그럼 본격적으로 책에 나오는 탈인간주의가 뭔지 얘기 나눠보죠. 위 그림(작자 미상)은 <탈인간 선언>에 실제로 들어간 삽화로 책의 내용을 대변하고 있어요. 먼저 왼쪽의 'EGO(자아)'는 지금의 인간 중심주의를 표현해요. 인간이 피라미드의 정점에 있고 이른바 고등동물과 하등동물이라는 인간의 분류법에 따라 피라미드의 중, 하층부가 구성되죠. 이 피라미드의 핵심은 바로 '위계 질서'에요. 누가 누구보다 높은가, 누가 누구보다 아래에 있나. 그래서 같은 인간이라도 강자가 약자보다 높은 곳에 위치한다는 게 특징이에요.
반면 오른쪽의 'ECO(환경·생태)'라고 적힌 그림은 동그란 원형을 이루고 있어요. 각 주체들의 관계는 상하관계가 아니라 서로 무한대로 연결돼 있는 '순환'의 구조. 누가 더 나을 것도, 못할 것도 없고 저 멀리 있는 존재라도 어떻게 해서든 나와 영향을 주고 받아요.
김 작가님은 "인간은 스스로를 세상의 확고부동한 주인공으로 상정하는데 그치지 않고 위계질서를 부여해 우월하고 예외적인 존재로서 군림해왔다"며 탈인간은 이렇게 인간이란 개념에 스며들어 고착화된 관념들로부터도 탈피하고자 한다. 동시에 지금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인의 모습이 본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님을 끊임없이 환기하려 한다"고 적고 있어요.
인류세를 살아가는 우리가 잊어선 안 될 몇 가지
이러한 저자의 인식을 이해하기 위해선 요즘 이슈로 떠오른 '인류세'라는 개념을 짚고 넘어가면 좋을 것 같아요. 인류세(Anthropocene)는 인류가 지구 환경을 급격하게 변화시켜 만들어진 지질 연대를 의미해요. 원래 지질 연대라는 건 오로지 자연 환경의 영향만으로 만들어지지만, 인류의 문명이 발달함에 따라 환경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기에 별도의 지질 연대로 인정해야한다는 주장이죠.
인류세를 주창한 분은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네덜란드의 지구 시스템 과학자 파울 크뤼천(Paul Crutzen)이란 화학자에요. 그는 산업혁명으로 오존층에 구멍이 나면서 새로운 지질 연대로 접어들었다며 2000년 인류세를 주장했어요.
인류의 이름이 붙은 지질 연대까지 만들잔 얘기가 나오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인류가 환경에 미친 영향이 너무 크기 때문인데요. 인류는 지구에 대체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요. 학자들은 플라스틱의 급격한 증가, 이산화탄소와 메탄 농도 급증, 핵실험, 환경 오염 증가와 지구 온난화 확대 닭 소비 증가가 '인류세'의 증거이자 기준이라고 보고 있어요.
학자 한 사람의 주장이 아니고요. 2004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로사이언스 포럼에서 과학자들이 인류세 이론을 지지한 바 있어요. 오는 2024년 부산 세계지질과학 총회에서 이 인류세가 새로운 지질 연대로 공식 발표될 가능성이 높아 모두가 주목하는 중.
“너희는 참 좋겠구나. 여유가 넘쳐서!”
자신이 살아가는 지구를 이렇게 만들 수 있었던 건 바로 앞서 언급한 인간 중심의 사고 체계 때문이라는 게 저자의 주장이에요. 만약 이 사고의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지구는 공멸의 길을 걸을, 아니 이미 걷고 있다고 말하죠. 저자는 아무리 외쳐도 바뀌지 않는 이 답답한 현실에 명쾌하고 날카로운 말의 비수를 꽂아 넣기도 해요.
"시간을 끌수록 또 하나의 생명 혹은 희망이 죽어나가는데도 우선 순위와 '사회적 합의'를 핑계 삼으며, '변화란 그렇게 조급히 이뤄지지 않는다'는 교훈을 가르치기에 바쁜 이들이 어찌나 많은지... 졸지에 조급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힐 때마다 그 시구가 떠오른다. 너희는 참 좋겠구나, 여유가 넘쳐서!"
총 211페이지로 길지 않고, 각 챕터도 짧아서 술술 넘어가는 책이에요. 답답한 기후 위기 기사를 보면서 우울함 가득했던 분이라면 이 책을 읽으며 함께 분노하고, 이 분노가 예민하거나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는 동질감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아 일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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