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의 ‘채권 돌려막기’ 관련 제재 절차가 이르면 내년 초부터 시작된다. 일부 증권사 대표이사(CEO·최고경영자)들에 대해서는 중징계가 예상된다.
25일 금융감독 당국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미래에셋·한국투자·KB·NH·교보·유안타·유진·하나·SK 등 9개 증권사의 채권형 랩·특정금전신탁 업무 실태를 검사한 결과와 관련해 이르면 다음 달 제재심의위원회 절차를 시작할 예정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 증권사에 의견서를 보냈고 회신을 기다리고 있다”면서 “가능한 한 이른 시일 내 제재심 절차를 시작하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금감원이 발표한 검사 결과를 보면 9개 증권사에서 예외 없이 다수의 위법 사항과 내부통제상 문제점이 확인됐다. 실제 9개 증권사의 운용역들은 만기 도래 계좌의 목표 수익률 달성을 위해 불법 자전거래를 하고 고객 계좌 간 손익을 이전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손실 전가 금액은 증권사별로 수백억~수천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방식으로 다른 고객에게 끼친 손실액은 모두 5000억 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일부 증권사들은 증권사 고유 자산을 활용해 고객의 투자 손실을 보전했는데 이 과정에 CEO 등 경영진이 감독을 소홀히 했거나 의사 결정을 주도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랩·신탁 만기 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워지자 일부 증권사들은 고객 계좌의 기업어음(CP)을 고가 매수하는 방식으로 수익률을 맞췄고 여기에 CEO가 관여했다는 것이다. 원칙적으로 금융투자 업자가 투자자에게 일정한 이익을 사후 제공하는 것은 불법이다.
관여 수준에 따라 일부 CEO들에 대해서는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각 증권사마다 CEO 관여 수준이 다르다”며 “일부는 신분상 제재가 생기는 중징계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사 임원에 대한 제재 수위는 △해임 권고 △직무 정지 △문책 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5단계로 나뉜다. 문책 경고부터는 금융사 임원 취업이 3~5년간 제한돼 중징계로 분류된다. 금감원은 이번에도 일부 CEO가 중징계 처분 받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증권가에서는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태에 이어 증권사 CEO 징계가 또다시 재연될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앞서 금융위는 사모펀드 불완전판매와 관련해 박정림 KB증권 대표에게 직무 정지 3개월, 정영채 NH투자증권(005940) 대표에게 문책 경고 등 중징계를 결정한 바 있다.
업계에서는 암묵적 관행으로 행해지던 증권사의 불법 자전거래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금감원의 이번 검사와 제재 절차가 의미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금융투자협회는 금감원이 랩·신탁 관련 검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날인 이달 18일 ‘금융투자 업계 신뢰 회복을 위한 윤리경영 선포식’을 열고 랩·신탁 불건전 영업 관행 근절을 위한 내부통제 강화를 약속했다. 금융투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랩·신탁 관련 영업 관행이 본질적으로 잘못된 부분이 많았다”며 “관련 징계가 진행되면 당분간 초대형 투자은행(IB) 추가 인가도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