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이 밝았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지도 벌써 3년차다. 특히 올해는 총선이 있다. 경제가 살아나야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경제 회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사실 먹고사는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그래서 세상의 모든 정권은 좌우를 가리지 않고 기업에 “투자를 더 해달라”고 을러도 보고 달래도 보는 것이다. 자국 기업이든 해외 기업이든 기업이 돈을 써야 일자리가 생기고 바로 그 일자리가 국민 입장에서는 최고의 복지인 만큼 이는 정당한 통치행위의 연장선이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리더라면 운명을 걸고 매일매일 사투하는 기업의 힘을 본능적으로 안다. 기업을 제대로 활용할 능력이 있느냐 여부는 작게는 정권의 명운을 가르고 크게는 한 나라 경제를 반석 위에 올릴 수 있느냐를 결정짓는다.
문제는 통치자가 투자와 일자리를 요구하는 맥락의 적절성 여부다. 이게 잘못되면 시장에 어이없는 시그널을 주게 된다. 그 결과 일자리는 해외로 빠져나가고 산업은 공동화될 가능성이 커진다. 대표 사례가 2018년 여름께 문재인 전 대통령의 인도 노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공장 준공식 방문이다. 당시 문 대통령은 한국의 대표 기업인 삼성이 인도에 투자하는 곳에 가서 이재용 삼성 회장(당시 부회장)을 격려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이 해외에서 경제 영토 확장에 나선 대기업을 치하했다고 추켜세웠지만 한국적 맥락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문 대통령의 행보는 ‘인도 참사’에 가깝다.
일단 한국의 기업들은 해외로 나가지 못해 안달이 난 상태다. 수도권에 공장을 세우려면 지방에서 난리를 치고 정부가 기업의 세금을 깎아줄라치면 부자 감세 프레임으로 또 훼방을 놓는 게 한국 상황이기 때문이다. 반도체만 해도 팹을 짓는 데 용인(한국)은 8년, 가오슝(대만)과 텍사스(미국)는 3년, 시안(중국)은 2년이 걸린다는데 어떤 기업이 한국에 남고 싶어할까. 가만 놓아둬도 기업들은 현지 공략을 명분 삼아 해외로 나갈 판이다.
그런데 굳이 문 대통령이 자국 투자에 쌍수 들고 환영하는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 옆에서 사진을 찍고 있으니 볼썽사나울 수밖에 없다. 곤란한 일이 발생할 때마다 유체 이탈 화법에 능했던 대통령다운 처신, 남의 잔치에 신이 난 들러리 대통령다운 면모를 과시한 장면이라는 생각이다.
반면 여우 같은 대통령도 있다. 바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얘기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세계 최대 풍력 타워 제조 업체인 한국 CS윈드의 미국 공장을 찾았다. 그가 이 기업에 들른 것은 자신의 치적을 자랑하기 위해서였다. 한국의 기업이 자신의 인베스트 인 아메리카 정책 덕분에 미국에 투자했고 일자리를 만들 수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 입장에서는 참 얄밉게도 이날 공개된 사진 가운데 CS윈드가 한국 업체임을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 힌트는 전혀 없었다. 성조기와 바이든, 그리고 백인들만이 샷에 담겼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 서방이 번다는 얘기가 절로 떠오른다.
그간 자유 시장경제의 수호자로서 보조금과 정부의 개입은 악(惡)이라던 미국마저도 기업투자 유치를 위해 얼굴색을 바꾼 지 오래다. 이제는 모든 나라가 기업을 안방으로 모시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미국을 추종하던 우리 입장에서는 멘붕이 와도 모자랄 판이지만 정치권의 기업 괴롭히기는 여전하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의 샷, 바이든의 샷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미 답은 나와 있다. 윤 대통령이 한 장의 사진에 담아야 할 기업인은 한국에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국내외 기업의 최고경영자(CEO), 어려운 여건을 딛고 창업해 꿈을 키우는 스타트업·벤처 기업인이어야 한다. 이게 바로 한국의 제조업 공동화를 막아 경제안보를 실현하는 길이고 최고의 복지를 달성하는 길이다. 또 이는 부산 엑스포 참사 후 재벌 총수를 길거리 분식에서 병풍 세웠던 윤 대통령을 국민의 머릿속에서 지우는 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신년에 이런 메시지를 시장에 던지지 못하면 한국에는 남의 둥지에서 알을 낳는 뻐꾸기 같은 기업으로 가득 차게 될 것이다. 변곡점에 선 한국 경제에 힘을 실어줄 메시지가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