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케어나 개인 안보처럼 미래 기술을 상용화하는 분야에서는 한국 기업들이 외국보다 한 걸음 더 앞서나가고 있습니다.”
9일(현지 시간) 개막을 앞둔 세계 최대 전자·정보기술(IT) 전시회인 ‘CES 2024’의 주인공 중 하나로 한국 스타트업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 스타트업들은 CES 최고 권위인 ‘최고혁신상’ 27개 중 8개를 휩쓸어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
텐마인즈·탑테이블·지크립토·로드시스템 등 올해 CES 최고혁신상을 받은 스타트업 4곳의 최고경영자(CEO)들은 미국 출국에 앞선 지난달 27일 서울경제신문 본사에 모여 수상 비결과 미래 테크 트렌드 변화에 대해 토론했다. 스타트업이 데스밸리를 넘어 장기적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른 무엇보다 원천 기술이 중요하며 이 기술에 대한 끊임없는 혁신이 필요하다는 게 이들 CEO들의 결론이다.
한자리에 모인 스타트업들의 공통분모는 헬스케어와 개인 보안이다. 모두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고령화 및 디지털 전환 추세에 따라 더욱 중요성이 높아질 산업으로 꼽힌다. 특히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이 각광받으면서 개인 맞춤형 건강관리와 개인 보안 침해에 대한 우려가 동시에 커지고 있어 시장 규모도 폭발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우선 코골이 완화 베개인 ‘모션필로우’를 제작한 텐마인즈는 이 제품으로 3회 연속 혁신상을 수상해 CES에서 스타로 떠올랐다. AI가 탑재된 스마트 모션 시스템이 코골이 소리와 산소 포화도 등 생체 신호를 감지하면 베개 속에 내장된 4개의 에어백이 기도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코골이를 완화해주는 제품이다. 장승웅 텐마인즈 대표는 “현대인에게 잠은 삶의 질과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만큼 전 세계적으로 슬립테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며 “CES 주최 측에서도 이를 고려해 슬립테크 관련 부스 규모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차원(4D) 푸드 프린팅 기술을 통해 개인 맞춤형 영양을 제공하는 탑테이블도 헬스케어 분야에서 독창적인 경쟁력을 인정받았다. 유현주 탑테이블 대표는 “맞춤형 영양 솔루션을 고도화하려면 개인 건강진단 및 분석 기술력을 갖춰야 한다”며 “이 같은 맞춤형 건강 솔루션에 대해서는 국내보다 외국 시장의 관심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한국 헬스케어 기업들은 올해 CES에서 AI와 접목한 차세대 제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의료 AI 전문 기업 웨이센은 이번 전시회에서 혁신상 3관왕을 달성했다. 세 번에서 다섯 번 정도의 기침음만으로 사용자의 호흡기 건강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 AI 기반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등으로 혁신성을 인정받았다. 바디프랜드·세라젬·코웨이도 CES 2024에서 차세대 안마 의자 또는 의료 기기를 선보이며 글로벌 헬스케어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구상이다.
보안 분야 역시 국내 기업들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분야로 꼽힌다. 올해 CES에서 최고혁신상을 수상한 로드시스템의 모바일 여권 신원 인증 기술과 지크립토의 블록체인 기반 온라인 투표 시스템은 획기적인 보안 관련 기술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지크립토와 로드시스템의 기술이 모두 ‘세계 최초’ 타이틀을 보유하고 있을 정도다.
오현옥 지크립토 대표는 “투표는 인류의 영원한 숙제였는데 특히 지난 미국 대선에서 투표 불복 이슈가 생기는 등 투표에 대한 불신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면서 “각국에서 투표 제도를 개선하려 하고 있어 우리 기술을 알아보려 부스를 많이 방문할 것 같다”고 말했다.
개인 보안(Cybersecurity) 분야 또한 전시회의 주요 45개 제품 카테고리로 선정되는 등 입지가 넓어지는 추세다. 중앙 서버 기반이 아닌 분산원장을 이용해 온라인상 보안과 신뢰도를 높이는 블록체인도 카테고리 중 하나로 포함됐다. 국내 대기업도 보안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LG전자는 AI 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보안 관리 솔루션을 CES 2024에 처음 공개한다. 자체 개발한 ‘CSMS 콕핏 플랫폼’은 차량에 적용되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를 아울러 차량의 전체 생애 주기 동안 사이버 보안에 대비·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관제센터 역할을 수행한다. 오 대표는 “해킹 수법이 고도화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한 사이버 보안에 대한 투자가 늘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내 스타트업이 각종 첨단 분야에서 활약할 수 있는 요인으로는 발 빠른 시장 대응력이 거론된다. 유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은 시장 정보 파악부터 의사 결정까지 빠르게 추진하고 이슈에 대한 대처 능력이 좋은 편”이라고 평가했다. 장양호 로드시스템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업계는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남들이 안 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으려고 부단하게 노력한다”면서 “원천 기술을 잘 아는 창업자가 회사를 리드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한편 텐마인즈·탑테이블·로드시스템·지크립토 외 CES 2024 최고혁신상을 받은 스타트업은 만드로(부분성 절단 장애인용 로봇 손가락), 미드바르(사물인터넷 기반 스마트팜), 스튜디오랩(AI 기반 커머스 생성 솔루션), 원콤(시각장애인용 스마트폰 커뮤니케이터)이다. 이는 역대 최다를 기록했던 CES 2023의 기록(5곳)을 넘어선 것이다.
이들 CEO들은 또한 CES를 계기로 해외 기업과의 사업 협력을 성사시킬 수 있도록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내놓았다. 무엇보다 해외 진출에 대한 조력이 중요하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요구다. 유 대표는 “일본만 봐도 인구가 1억 3000만 명에 달하는 내수를 갖고 있어 스타트업도 자국 내에서 안주할 수 있는 반면 한국은 내수 규모가 충분하지 않다”고 말했다. 오 대표는 “최고혁신상을 받은 직후 벤처캐피털에서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해외 진출 측면에서도 CES 같은 큰 오프라인 무대에서 활약하는 것이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