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무용을 전공해 20년째 춤을 추고 있는 현업 무용수이자 일반인·배우 등을 상대로 발레 등을 가르치고 있는 조성은(37) 씨의 또 다른 얼굴은 보디빌더다. 지난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대회 출전을 시작했는데 4개월간 도합 4개 대회에 나가 ‘적어도 뭐 하나씩은 들고 돌아오는’ 성적으로 순탄한 스타트를 끊었다. 특히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는 유서 깊은 대회 중 하나인 WBPF 월드챔피언십 스포츠 피지크 종목의 한국 대표로 출전해 톱5에 든 것은 스스로도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고 한다.
중력을 거슬러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무게 부하를 줄여야 하는 발레와 근육 부피를 키우고 다듬기 위해 운동하는 보디빌딩은 얼핏 대척점에 서 있는 운동처럼 보인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차이보다 닮은 점이 더 많다는 게 조 씨의 설명이다. 예컨대 두 운동 모두 육체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강인한 체력을 단련하기 위한 운동이라는 점이 같다. 보기 좋게 가꾼 근육을 평가하는 공연 예술성을 갖추고 있는 스포츠라는 점도 공통점이다. “무용을 하면 사람의 육체에 가해지는 중력을 몸이 느끼는 순간이 있는데 웨이트 역시 무게를 들어 올릴 때 지면과 내 몸이 어떤 지렛대를 만들며 무게를 받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요. 그게 아주 즐겁고 재밌어요.”
그가 처음 웨이트 운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좀 더 춤을 잘 추고 싶다’는 단순한 욕구였다고 한다. “미국 뉴욕 페리댄스(Peridance)에서 외국 친구들과 춤을 춘 시간들이 있었는데 다들 정말 굉장히 잘 뛰고 잘 움직인다고 해야 하나, 몸을 정말 잘 다룬다 싶었죠. 내게 부족한 게 기초 체력이나 스태미나가 아닐까 싶어 근력 운동을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운동이 코로나19 직전 3년간의 뉴욕 생활을 접고 한국에 돌아온 후로도 이어졌다. ‘행당동 115번지’ 등 여러 무용극 무대에 오르고 영상 작업에도 참여하고 배우 트레이닝 및 발레 티칭 등을 이어가는 무용가의 일상 속에서도 헬스장 출근을 빼놓지 않았다. 시간이 갈수록 근력 운동은 조 씨의 일상에서 점점 중요해졌다. 그는 “제 하루는 새벽 다섯 시 반에 시작되는데 그때 헬스장이 문을 연다”며 웃었다. 새벽부터 3~4시간씩 근력 운동에 집중한 후 예정된 발레 클래스 등의 일과를 소화하고 다시 헬스장으로 향한다. 일하고 잠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운동에 바치고 있다는 조 씨는 “헬스장은 내 놀이터이자 수양터”라고 말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항상 뭘 해야 하고 무언가를 보여줘야 하잖아요. 그런데 운동을 하면 혼자라는 것에 집중하게 돼요. 운동하며 고립되는 그 시간 자체가 즐거워요. 또 운동을 열심히 하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도 사라진답니다. 그런 에너지를 모아서 차라리 ‘쇠질(무거운 기구를 활용한 근력 운동)’이나 한번 더 하자 싶어지죠.”
조 씨의 올해 목표는 보디빌딩 프로 대회에 출전할 자격인 프로 카드를 취득하는 것이다. 그는 “사실 대회는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나갈 수 있는 것이지만 프로들만 출전하는 프로 리그 수준은 아무래도 조금 더 올라가게 된다”며 “이왕 운동을 시작했으니 다음 단계를 노려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향후 일반 성인을 넘어 시니어나 장애인을 위한 발레 수업을 진행하고 싶다는 바람도 말했다. 운동 초보나 근력이 약한 어르신들이 부상 위험 없이 접근하기에 발레만큼 좋은 운동도 없다는 게 조 씨의 생각이다. 그는 “외국 무용단에는 나이가 많은 댄서는 물론 한쪽 눈이 없다거나 한쪽 팔이 없는 등 신체장애가 있는 무용수도 꽤 많은데 우리나라는 유독 무용은 일찍 시작해야 한다거나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식의 선입견이 큰 편이라 아쉽다”고 말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 번 클래스를 들으면서 세계적인 발레리나를 목표로 하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더 건강해지고 싶다든가 삶의 활력소가 필요하다 정도의 목표는 지금 운동을 시작하는 누구나 얼마든 이룰 수 있어요. 그러니 부담 없이 음악에 맞춰 몸을 한번 움직여보시면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