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증권일반

[로터리] 기업 구조조정과 거버넌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 원장





워크아웃(기업 개선 작업)이 담긴 기업 구조조정 촉진법은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극약 처방이었다. 기촉법은 그래서 지난 연말 극적으로 3년간 다시 연장됐지만 금융기관의 사유재산을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특히 외형만 채권자 주도일 뿐 금융 당국의 입김이 절대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기촉법이 6번이나 연장된 것은 어찌보면 비정상이라는 증거다.

태영건설(009410) 대주주 일가도 위기를 맞아 책임 있는 모습보다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 외환위기 후 외국계 금융인들 사이에서 무책임한 한국 재벌들을 비꼬던 속어 ‘BJR(배째라)’를 떠올리게 했다. 태영건설이 법정관리로 가면 수많은 협력 업체들이 무너지고 시장도 얼어붙을 것이 뻔한데 설마 워크아웃을 불발시키겠느냐는 태도였다. 그러면서 지주사는 자본을 확충하고 연대보증 의무는 완화하는 꼼수를 썼다.



태영그룹 대주주가 책임을 방기하고 ‘손실은 나몰라’라 하면 국민은 분개할 수밖에 없다. 도급 순위 16위 건설회사의 부실 처리를 놓고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 금융 당국 수장들이 줄줄이 나선 것 자체가 정상은 아니다. 결국 창업 회장이 나서 대국민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이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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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언론에서는 대주주의 ‘사재 출연’이라는 관행은 정당한가라고 묻는다.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원칙으로 할때 비상 경영 시 사재 출연 요구도 부당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라는 얘기다. 일견 타당해 보이지만 비례적 이익을 지키지 않았으니 초과 책임을 부과하는 것은 당연히 문제가 없다. 지주사인 티와이홀딩스의 태영건설 지원도 배임이라고 꼬집지만 지배주주 및 자사주를 합쳐 63%의 지분을 보유한 회사에 적용할 말은 아니다.

자본주의 거버넌스의 핵심은 권한과 책임, 위험과 보상의 비례다. 자본주의적 정의는 ‘오너’도 한순간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리스크가 상존하는 동적 평등(ergodicity) 상태다. 더 많이 누렸으면 책임도 더 많이 져야 한다. 이 원칙이 작동하지 않는 세계가 공산주의 국가다. 기촉법과 워크아웃이 이 원칙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반시장적 도구일 뿐이다.

2022년 12월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관련해 선제적으로 사업장 선별 정리 및 금융회사 손실 인식 등을 강력히 건의한 바 있다. 안타깝게도 건설 경기 회복 가능성과 경기 침체 우려로 지금까지 창구 지도와 만기 연장으로 대처하다 태영건설 사태에 이르렀다.

현 사태는 건설사와 금융기관의 과도한 리스크 추구와 4월 총선 전에는 어떤 부실 사태도 용납하지 않으려 통제에만 집착하는 관련 기관들의 합작품이다. 정부는 조속히 기존 사업장의 선별 정상화 플랜뿐 아니라 건설 시행사 건전화, 시공사·신탁사 보증 문제, 브리지론 구조 등 과도한 리스크 추구를 방지해 부동산 PF의 모범 규준이 될 종합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남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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