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조세’로 불리는 법정 부담금 평가 제도가 유명무실하게 운영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18일 서울경제신문에 따르면 기획재정부 산하 부담금운용평가단은 지난해 12월 실시했던 36개의 부담금 평가에서 전기 사용자 일시 부담금 등 3개 항목에 대해서만 폐지를 권고했다. 2022년에도 31개 부담금 중 1개만 폐지 대상으로 지적됐고, 2021년에는 23개 부담금을 모두 존치해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부담금은 특정 공익사업에 쓸 재원을 조달하기 위해 세금과 별도로 걷는 돈으로 모두 91개에 달하고 있다. 전체 부담금 규모도 2002년 7조 4000억 원에서 올해 24조 6157억 원으로 세 배 넘게 급증했다. 하지만 국민들이 징수 여부를 제대로 모르는 데다 도입 취지와 달리 장기간 유지돼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킨다는 비판이 많다. 1만 5000원의 티켓에 450원씩 붙는 영화 입장권 부과금, 해외여행을 떠날 때 1인당 1만 1000원씩 내는 출국 납부금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무분별한 부담금 신설·증설을 막기 위해 2002년부터 부담금관리기본법을 마련해 3년마다 재평가하고 있지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조세 저항이 작고 국회의 통제를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각종 사업비를 확보하는 데 편리한 부담금 제도를 계속 활용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준조세나 그림자 조세로 악용되는 부담금이 도처에 남아 있다”면서 전면적인 개편을 주문했다. 정부는 객관적인 평가 기준을 만들어 시대착오적인 부담금을 솎아내는 등 옥석 가리기를 통해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한다. 꼭 필요한 부담금은 존치하되 국민 부담만 키우고 사업 타당성이 의심스러운 부담금은 폐지하거나 통폐합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부담금개혁위원회를 설치해 꼼꼼한 심사를 거쳐 존폐를 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정부가 확고한 개혁 의지를 갖고 준조세 재정비에 나서야 일선 기관과 수혜자 등 기득권층의 반발을 꺾을 수 있다. 야당도 무턱대고 “총선용 정책”이라며 반대하지 말고 국민 편익 차원에서 부담금 수술에 협조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