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신정권이 아닌 대한민국 국회가 발목을 잡는 바람에 30조원 수출 물량을 날릴 판입니다.”
K방산의 입지를 다지는 기반이 된 폴란드 방산 수출에 위기감이 감돌고 있다. 폴란드에 대한 최대 30조원 규모의 무기 2차 수출 계약과 관련한 국회의 입법 지연이 여야 정쟁 탓에 대폭 축소되거나 무산될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
국회에 따르면,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 구매 대금을 추가로 대출해줄 수 있게 하는 내용의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안은 지난 9일 종료된 임시국회에서 한 차례도 심사하지 못한 채 보류 상태다. 15일 시작된 1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안이 처리되지 않는다면 4월로 다가온 총선으로 사실상 상임위 활동이 어려워 21대 국회의원 임기 내 처리가 어려울 것으로 관측이 지배적이다.
폴란드 정부는 2022년 7월 한국항공우주산업의 FA-50 전투기 48대, 한화디펜스(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672문, 현대로템의 K2 전차 980대를 도입하기로 하고 한국 측과 기본 계약을 체결했다. 이 가운데 K9 자주포와 K2 전차 물량은 계약을 1차와 2차로 나눠 진행하기로 했다. 폴란드 정부는 기본 계약 한 달 만인 2022년 8월에 17조 원어치를 먼저 사들이는 내용의 1차 계약을 체결했다.
당시 한국은 폴란드에 한국산 무기를 살 돈을 빌려주고 폴란드는 이 돈으로 무기를 구매해 향후 돈을 갚아 나가기로 합의했다. 이는 국가 간 대규모 무기 거래에서 흔히 쓰이는 방식이다.
폴란드, 계약 파기나 축소할 우려 커져
이에 따라 1차 계약에는 수은과 무역보험공사가 6조원씩 총 12조 원을 폴란드에 빌려주는 금융지원 내용이 포함됐다.
그러나 폴란드에서 ‘수주 잭폿’을 터뜨린 K-방산이 위기감에 휩싸였다. 당장 폴란드 정권교체 여파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모습니다. 폴란드 새 정부가 전 정부의 무기 계약을 조정할 가능성이 밝히면서, 계약 파기나 축소에 대한 우려와 기존 계약 유지에 대한 기대가 교차하고 있다.
이에 국내 방산업계는 일단 기존 계약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면서 잔여 계약 물량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 대비와 서둘러 계약 체결 마무리 등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응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방산업계와 국방 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K-방산의 수출 계약 체결액은 130억∼140억 달러 수준이다. 폴란드와의 대규모 계약이 성사된 지난해 173억 달러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다. 40억 달러 이상의 격차가 나면서 폴란드 수출 대박의 일회성 효과가 끝나면서 K방산이 정점을 찍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K-방산 전체 수출에서 폴란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2022년 72%로 절대적이다. 지난해도 32% 수준으로 전체의 3분의 1에 달했다.
올해 폴란드 수출 비중이 줄어든 것과 관련해 국방 당국 관계자는 “2차 이행계약 협상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며 “2차 물량의 조속한 수출 계약 마무리를 위해 국회가 여야 쟁정이 아닌 대한민국 K방산을 위해 적극 협조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방산업계도 금융지원에 발목이 잡힌 것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 2차 이행계약 협상 지연은 정부의 금융보증 지원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면 나머지 수출 물량의 계약 체렬에 악영향이 미칠 수 밖에 없다고 우려하고 있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폴란드 내부의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 총선이 있는 10월 이전에 2차 계약을 서둘러 마무리하자는 게 업계의 중론이었으나 수출입은행을 통한 정부의 수출금융 지원 한도가 부족해 실기한 측면이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지난해 10월 총선 결과 폴란드의 정권교체가 현실이 되자 11월부터 외신을 타고 ‘한국의 무기 수출 계약이 무산될 우려가 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국내 방산업계는 바짝 긴장했다. 유력 외신에 따르면 폴란드가 과거에도 군용 헬리콥터 50대를 프랑스로부터 구매하는 가계약을 체결했다가 이듬해 정권 교체 후 이 계약을 파기한 사례도 있다.
총선에서 승리한 야권 연합의 유력 정치인인 시몬 호워브니아 폴란드 하원의장은 실제로 지난해 12월 현지 방송 인터뷰에서 ‘전 정부가 총선 이후 체결한 계약을 무효로 할 수도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면서 이런 불안은 고조시켰다.
“폴란드, 정권 교체 후 계약 파기 전례 있어”
당장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총선 이후인 지난해 12월 4일 폴란드 군비청과 K-9 자주포 152문 등을 수출하는 내용의 2차 계약을 맺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이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며 애간장을 태웠다. 다만 이런 혼란은 도날트 투스크 폴란드 신임 총리가 의회 국정연설에서 “부패가 연루된 경우를 제외한 전 정부가 체결한 모든 무기 도입계약을 존중한다”고 밝혀 잦아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대규모 잔여 계약을 남겨 둔 국내 방산업계는 폴란드의 부패 수사와 정책 변화에 예의 주시하며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고 상황이다.
또 다른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작년엔 폴란드에서 수주 잭폿이 터져 업계가 어지러울 정도로 잔뜩 흥분한 상태였는데, 올해는 정권교체 리스크에 롤러코스터를 탄 듯 어지러운 상황”이라고 전했다.
현재 국내 방산업계가 폴란드와 맺은 기본계약에 따라 남은 잔여 계약 물량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 308문 잔여 물량과 현대로템의 K-2 전차 820대 2차 계약 물량 등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22년 7월 폴란드 군비청과 K-9 672문, 다연장로켓 천무 288대를 수출하기 위한 기본계약을 체결하고, 그해 8월 K-9 212문, 11월 천무 218대를 수출하는 1차 계약을 맺었다. 이어 지난해 12월 4일 K-9의 남은 계약 물량(460문) 중 일부인 152문에 대한 2차 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기본계약의 46% 규모인 308문의 계약을 남겨둔 상태다.
지난해 1차 계약에서 폴란드와 K-2 전차 180대 수출을 확정한 현대로템은 1차 계약의 4.5배 규모인 820대 계약을 2차 계약 물량으로 남겨 두고 있다.
1차 계약 물량보다 잔여 계약 물량 많아
두 업체 모두 공식적으로 “폴란드와의 잔여 물량 계약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는 입장이지만 속내는 고민이 깊은 것으로 전해졌다. 국회의 입법이 조속히 마무리해 잔여 물량 수출계약이 체결되기 바라는 분위기다. 하지만 1차 계약 물량보다 잔여 계약 물량이 많은 탓에 내부적으로는 남은 계약을 원만하게 성사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마땅히 대안이 없는 지경이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폴란드 수출 계약과 관련해 변화된 상황은 현재로선 없다”며 “기존 계약에 대한 수출 준비를 예정대로 하면서 폴란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경남 창원에 있는 K-9 공장의 생산라인을 증설하고 추가 인력을 채용하는 등 폴란드 계약 물량을 차질 없이 공급하기 위한 절차를 차근히 진행 중이다.
현대로템은 2차 계약에 신중한 모습이다. 특히 폴란드 측이 K-2 전차의 기술이전을 통한 높은 수준의 현지화를 요구하고 있어 이에 대한 협상에 집중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독일이 레오파르트 전차를 앞세워 폴란드 새 정부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현대로템은 K-2 계약 고수를 위해 공을 들이고 상태다.
현대로템 관계자는 “폴란드 새 정부의 국방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오는지 예의 주시하면서 현지 파트너사와 긴밀히 소통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방산진회 한 관계자는 “국내 업체들이 기존 계약이 무산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지만 남은 잔여 계약의 내용이나 공급 물량이 일부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대응 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여야가 K방산의 잭팟을 터트린 폴란드 수출 마무리를 위해 손잡아야 한다고 당부하고 있다. 폴란드와의 2차 계약 규모는 K-2 전차 820대와 K9 자주포 460문 등 30조 원어치에 달한다. 논의 중인 기술 이전과 현지화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업계에선 추가 계약 규모가 40조원대일 것으로 추산한다.
실제 국회 기재위의 검토 보고서에 따르면 수은의 자본 확충은 K방산 뿐만 아니라 반도체, 이차전지 등 첨단 전략산업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업 자금 지원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 게다가 향후 우크라이나 전후 재건사업 등 초대형 인프라 발주 시 우리 기업의 수주를 위해서도 수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한 방산 전문가는 “여야가 국익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총선 전에 모두 입법을 서둘러야 끝내야 한다”며 “국회가 기업의 해외시장 공략을 앞장서 돕지는 못하고 잔칫상에 재를 뿌리면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