잦은 두통에 시달리는 60대 남성 A씨. 걱정스러운 마음에 두통의 원인을 찾고자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지만 정상 소견으로 나왔다. 다른 병원을 찾아 컴퓨터단층촬영(CT), 자기공명영상(MRI) 검사까지 받았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A씨는 "아픈 건 변함이 없는데, 정밀검사를 받아도 아무 이상이 없다고만 하니 안심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골치가 아프다"고 하소연 했다.
비단 A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흔히 CT·MRI 같은 정밀검사를 받으면 수시로 찾아와 일상을 괴롭히는 두통의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통을 호소하는 대부분의 환자는 검사에서 특별한 소견이 발견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걸까. 1월 23일은 '두통의 날'이다. 두통도 질병이라는 인식을 높이고 치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대한두통학회가 제정했다. 1주일에 2일 이상 두통이 있으면 3개월 안에 병원을 찾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최영빈 강릉아산병원 신경과 교수의 도움말로 두통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자.
◇ CT·MRI 검사 결과 뇌에 이상 없으면 ‘일차성 두통’
전체 인구의 90% 이상 경험하는 두통은 크게 '일차성 두통'과 '이차성 두통'으로 나뉜다. CT·MRI 검사 결과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고, 두통을 설명할 만한 뇌질환이 없다면 일차성 두통에 해당한다. 두통 자체가 증상이자 질환이라는 의미다. 흔히 알고 있는 편두통, 긴장성 두통, 후두부 신경통 같은 증상들이 일차성 두통에 속한다.
이차성 두통이란 뇌출혈·뇌종양·뇌수막염 같은 뇌질환이 두통의 원인인 경우다. 쉽게 말해 CT·MRI 검사를 통해 이상이 발견됐다면 이차성 두통에 해당한다. CT·MRI와 같은 뇌 영상 촬영 검사로 발견한 원인 질환을 치료하면 대부분 두통도 해결되는 양상을 보인다.
최 교수는 “일차성 두통의 경우 검사를 해도 특별한 이상 소견은 발견되지 않는다”며 “내가 앓는 두통을 이해하고 개인에게 적합한 생활습관 변화와 적절한 진료를 받는 것이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다”고 말했다.
◇일차성 두통, 유전 영향 크지만…생활습관·식습관도 관여
앞서 사례에서 언급된 A씨의 경우 일차성 두통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일차성 두통은 영영 원인을 알 수 없고, 치료도 힘든 걸까? 선행 연구들에 따르면 일차성 두통 중 편두통은 유전적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가장 많다. 유전성을 가진 상태에서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과로, 생활습관 등의 문제가 겹치면 두통이 빈번해지고 심해진다. 두통을 유발하는 생활습관에는 대표적으로 일상생활 중 자세, 급격한 체중감소, 음주, 흡연, 수면부족 등이 있다. 나아가 식습관도 두통에 영향을 미친다.
◇ 두통 치료법 진화…진통제 의존하기 보단 전문가와 상의해야
일차성 두통이 확실하다면 치료법은 있다. 전문가들은 환자가 호소하는 두통의 정도, 빈도 등에 따라 예방적 치료와 급성기 치료를 병행한다.
예방적 치료는 뇌 안에 존재하는 두통 관련 신경전달물질의 활성화를 감소시키는 약제를 투여해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예방하는 방법이다. 마그네슘, 고용량 비타민 B2, 항전간제, 베타 교감신경 차단제, 칼슘길항제, 항우울제 등 다양한 약제가 쓰인다. 흔히 미용적 목적으로 쓰이는 보툴리눔톡신 주사제가 두통 예방 용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항 CGRP(칼시토닌 유전자 관련 펩타이드) 수용체 차단제 등 항체약물을 피하·근육 내·정맥 내로 투여하는 주사제도 속속 도입돼 환자들의 선택지가 늘었다. 약물치료와 함께 후두부 신경차단술을 병행하기도 한다. 후두부 신경차단술은 초음파를 이용해 후두부 신경의 위치를 확인한 후 국소 마취제나 스테로이드를 혼합한 약제를 근육층 사이, 신경 주변에 주입하는 시술이다. 신경 압박을 호전시키면서 후두부 신경의 과도한 활성화를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원리다. 주로 후두부 신경염 치료에 사용되지만 뇌 안의 신경활성화 물질의 지속적인 감소를 유도해 다양한 두통 증상에 효과적이라고 알려졌다.
◇ 진통제 의존하다 ‘약물과용두통’으로 변하기도…과도한 공포는 금물
다양한 치료 방법이 존재하는 만큼, 진통제에 의존하거나 무작정 참기 보다는 전문가와 만나 증상을 이해하고 자신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하다. 환자 스스로 본인이 앓는 두통과 일상생활의 연관성을 파악할 수 있도록 ‘두통일기’를 작성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최 교수는 “진통제를 복용하는 것만이 두통에 대한 해결책은 아니다”라며 “두통이 있을 때 내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스트레스를 받았는지,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등을 작성해 분석하면 두통과 관련된 일정한 패턴을 파악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가벼운 두통일 경우 진통제만으로 증상을 완화할 수 있지만, 습관적으로 복용할 경우 자칫 약에 반응하지 않는 ‘약물과용두통’으로 변할 수 있다. 이런 경우 모든 약제를 끊고 몸 안에서 약이 소실되는 기간을 가져야 한다. 최 교수는 “본인이 앓는 두통에 대해 이해하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 적절한 진료와 치료를 받아 삶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며 “혹여나 뇌의 심각한 질환으로 인식해서 필요 없는 공포와 불안 혹은 불필요한 검사를 받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