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절박한 영세업체 "중대법 시행땐 폐업·실직 현실화할 것"

[27일 전면시행 유예 호소]

中企는 특성상 외국인 노동자 많아

직원 교육해도 산재발생 위험높아

"시행땐 회사팔겠다"는 기업 늘어

택배·배달업 등 처벌 대상 불분명

명확한 가이드라인도 없어 혼란

정윤모(왼쪽 네 번째)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줄 것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중기중앙회정윤모(왼쪽 네 번째)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줄 것을 호소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 제공=중기중앙회




“직원들에게 교육을 시켜도 인력이 부족한 영세 중소기업 특성상 외국인 노동자가 많아 사고 발생 위험이 높습니다. 문제는 직원 부주의로 사고가 발생하면 긴 시간 동안 경찰 조사와 재판을 받아야 하고 그 과정에서 일인다역을 하는 대표의 공백으로 회사 운영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합니다. 결국 중소기업들의 폐업이 속출하고 근로자들은 일자리를 잃게 될 수 있습니다.”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중소기업계가 큰 혼란에 빠졌다. 법이 시행되면 대기업과 달리 준비가 부족한 영세 중소기업에 형사처벌이 집중될 우려가 커지면서 법 집행에 따른 공포감을 호소하는 기업인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법 적용 대상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도 법 시행 이후 혼란을 가중시킬 것으로 보인다.

23일 중소기업중앙회 등 중소기업단체협의회는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27일로 예정된 50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유예해줄 것을 호소하는 성명을 긴급 발표했다.

정윤모 중기중앙회 상근부회장은 호소문을 통해 “50인 미만 사업장 대상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이 나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유예 법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조차 되지 않아 안타깝고 참담한 심정”이라며 “중소기업 현장에서 많은 기업인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23일 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으로 연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동근(오른쪽 세 번째) 경총 상근부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23일 국회에서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공동으로 연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촉구 기자회견’에서 이동근(오른쪽 세 번째) 경총 상근부회장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한국경영자총협회·한국무역협회·한국중견기업연합회 역시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중대재해처벌법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 유예 촉구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만약 이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 사업장 폐업과 근로자 실직 등 많은 우려가 현실화할 것”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유예 법안 통과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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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전남 장성에서 식품제조업을 운영하는 A 씨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위한 정부 차원의 교육이나 지원이 부족한 상황에서 규제하고 처벌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면서 “중대재해처벌법의 취지는 이해하지만 법을 만들고 단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줘야 하는데 길도 없이 법만 만들었다”며 울분을 토했다.

부산에서 자동차 연마제 제조업을 운영하는 B 씨 역시 “50인 미만의 규모면 사실상 대표가 기업 운영의 모든 걸 책임지고 있어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항이 발생하면 결국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며 “지금도 주변 기업 대표들은 공장을 매각하거나 폐업하겠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 실제 법안이 시행되면 폐업하는 중소기업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안전 관리 인력도 공급이 부족한 상황에 그나마도 대기업들이 다 채용했고 남은 인력 역시 대기업 대비 처우가 부족한 중소기업을 피하고 있다”며 “임금 및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현실에 맞지 않은 법을 적용해 중소기업의 경쟁력을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배달 오토바이. 해당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배달 오토바이. 해당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연합뉴스


여기에 사고 시 처벌을 받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다는 점이 알려지면서 택배와 배달 업계에서도 법 시행을 앞두고 비상이 걸렸다.

택배기사의 경우 통상적으로 개인사업자 형태로 활동한다. 하지만 중대재해처벌법이 보호하는 종사자에는 ‘계약 형식에 관계없이 사업의 수행을 위해 노무를 제공하는 자’가 포함된다. 고용노동부 해설서도 ‘택배기사도 종사자에 포함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때문에 사고 발행 시 1차적으로 택배기사와 직접 위탁계약을 맺고 있는 택배대리점주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배달라이더도 상황은 비슷하다. 국내 배달 업계는 배달의민족·쿠팡이츠·요기요처럼 배달 플랫폼 업체와 부릉·바로고 등 배달 대행 플랫폼 업체로 구분된다. 배달 플랫폼 업체는 2년 전부터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배달 대행 업체까지 적용됨에 따라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라이더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가 배달 앱과 배달 대행 업체, 식당 주인, 라이더 등 명확하지 않기 때문이다. 배달 대행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자영업자 C 씨는 “사고 시 처벌을 받는 대상이 명확하지 않고 라이더의 실수가 명확하더라도 이륜차의 안전 조치가 미흡하다고 하면 우리도 책임 주체가 될 수 있다”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지지 않으려면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필요한데 알 수 없어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외식 업계도 혼돈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식당에서 중대재해가 생기기는 쉽지 않지만 집단 식중독이 발생한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고용부 질의회시집을 보면 책임 소재는 본부보다 가맹점주에게 있는 것 같다”며 “만약 본사에서 보낸 소스 등에 문제가 있는 경우에는 어떻게 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노현섭 기자·박시진 기자·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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