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치 정도 되는 자막의 장벽을 넘으면 훨씬 더 좋은 영화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0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각본상·감독상·국제장편영화상 등 4개 부문을 석권한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한 말이다. 한국 영화 최초로 아카데미 후보에 올라 캠페인을 벌이고 다닐 당시 자막을 보는 불편함을 견디고 한국 영화 ‘기생충’을 봐 달라고 호소한 것이다. 그리고 4년이 흐른 지금 자막이라는 장벽은 이미 무너졌다. ‘미나리’의 윤여정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얼마 전에는 한국계 이정진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스티븐 연, 조셉 리 등이 출연한 드라마 ‘성난 사람들’이 미국 방송계 최고 권위의 에미상 8관왕을 차지했고 한국계 캐나다인 감독 셀른 송의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도 아카데미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드라마뿐 아니라 김밥·라면 등 K푸드도 미국을 비롯해 해외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수출만이 살 길’이라며 전투적으로 나서지 않았는데도 한국인이 등장하고 만든 K콘텐츠와 김밥·라면 등 K푸드가 선택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어서 일까. 너무 오래된 이 말은 이제 맞지 않는다. 한국이라는 ‘로컬 문화’가 선택받은 게 아니다. 전 세계가 글로벌화되면서 비슷한 특징을 갖게 됐고, 그런 가운데 가장 가장 세련된 스타일을 보여주는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세계는 ‘한국적인 K’에 열광하는 게 아니라 ‘세련되고 힙하고 핫한 K’에 열광하는 것이다.
이번에 에미상을 휩쓴 ‘성난 사람들’은 ‘한국인’에 방점이 찍힌 게 아니라 ‘이민자’에 방점이 찍혔다. 미국 이민자 그룹 중 하나인 한국인만의 특징도 있긴 하지만 가장 ‘힙한 이민자’ 그룹 중 하나가 한국인이기에 아마도 시청자들은 ‘성난 사람들’에 관심을 줬을 가능성이 높다.
라면의 인기도 마찬가지다. 한국은 라면 수출국 3위인데 외국인들이 좋아하는 라면은 우리의 ‘베스트셀러’와는 다르다. 그들은 불닭볶음면이나 비빔면을 더 좋아하며 국물이 끝내주는지는 관심도 없다. 외국인들은 국물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라면 수출을 더 많이 하려면 끝내주는 국물보다는 무엇에 더 신경 써야 하는지 알아야 하는 대목이다. K콘텐츠든 K푸드든 ‘한국적이어야 한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