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날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을 의미하는 트럼프 2.0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공화당 대선 후보 첫 경선인 아이오와 코커스(당원대회)에 이어 23일 뉴햄프셔주 프라이머리(예비선거)에서도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에게 대승을 거뒀다. 그는 자산가치 조작 사기 의혹, 성 추문 입막음, 기밀문서 유출, 대선 개입 의혹, 의회 난입 독려 등 91개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일부 유죄판결을 받았음에도, 오히려 지지자를 결집시키고 항소를 통해 재판을 지연시키고 있다. 형사소송 관련 재판 결과가 중도층과 무당층 유권자들의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그가 공화당 후보로 확정되더라도 재선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사법 리스크를 정치 이슈로 만드는데 모든 것을 쏟아붓고 있는 그의 전략이 성공할 경우 11월 5일 실시되는 제47대 미국 대선에서 그가 승리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재임 때 보여준 즉흥적 언행과 정책이 상당히 공격적이고, 파격적이었기 때문에 세계 각국에서 ‘트럼프 공포증’이 확산되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도 2024년 세계의 가장 큰 위험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꼽은 바 있다. ‘준비된 대통령’의 모습을 보이기 위해 2년 넘게 공약을 준비해 온 점도 트럼프 1.0과는 차이가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를 슬로건으로 내세우고 경제·안보·교육·정치 등 모든 분야에서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주창하는 것은 전과 동일하다. 그러나 그가 47대 미국 대통령이 되기 위해 준비한 정책들을 망라한 ‘아젠다 47’을 보면 트럼프 2.0 시대는 트럼프 1.0 때보다 정교하게 가다듬어진 급진적인 정책들이 과격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젠다 47′에서 그는 ‘강한 미국’을 만드는 세부 방안으로 관세 인상을 통한 세수 증대와 학교 혁신, 국방력 강화 등을 제시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역할의 근본적 재평가, 우크라이나 전쟁 종결, 유럽 각국에 대한 무기 비축 비용 요구, 차세대 미사일 방어망 구축 등이 국방력 강화 공약의 주요 내용이다. 이는 글로벌 정세에 큰 영향을 미치겠지만, 핵심은 경제이슈로 보인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집권하면 조 바이든 대통령이 도입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폐지하고, 강력한 보호무역정책을 통해 모든 수입제품에 10%의 ‘보편적 기본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새로운 ‘전략적 국가 제조업 이니셔티브’와 연결해 세계 무역구조를 재편하고 미국의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은 작년부터 인플레이션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연방준비제도가 기준금리를 급격하게 인상한 후유증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바이든 정부가 경제성장률과 고용, 주가 등 경제지표들이 양호하다는 점을 아무리 강조해도 서민들은 오히려 물가상승으로 실질임금이 줄어들어 삶의 질이 떨어졌다고 느끼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상황의 원인 제공자임에도 협상의 달인답게 바이든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 있는 점을 정치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다.
그는 ‘아젠다 47’을 통해 바이든 정부가 추진해온 자동차 연비 규제와 2032년까지 전기차가 미국 자동차 총판매량의 67%가 되도록 규정한 바이든의 환경 규제 정책도 2기 대통령 취임 첫날 모두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중심에서 벗어나 원전과 석유, 천연가스 등 에너지 효율 우선으로 기준을 전면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자동차산업을 살려 일자리를 만들고, 에너지가격을 낮춰 제조업 경쟁력 강화와 인플레이션 감축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위협을 제거하기 위해 ‘중국 때리기’는 더욱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미국에 대한 무역수지 흑자 규모가 사상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는 한국에 대해서도 관리무역을 요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미국의 대선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선될 경우 제조업의 부활을 도모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공격적인 산업정책을 수립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