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업

'세토끼' 잡은 MS·메타…"韓, 공익법인 취득·의결권 규제 없애야"

[공익법인 규제 족쇄]

◆ 기업승계 막는 '킬러 규제'

세계 최고 상속세율 버거운데

공익법인 활용 막혀 부담 가중

규제 피해 해외이전 선택하기도

기업승계 보장·복지 확충 연계한

스웨덴 대타협 사례 벤치마킹을

경기 성남 판교의 넥슨 본사 전경. 연합뉴스경기 성남 판교의 넥슨 본사 전경. 연합뉴스






국내에서 건자재업을 하는 중견기업 A사는 공익법인과 관련한 세법 및 공정거래법 규제가 조금이라도 완화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제도하에서는 막대한 세금 부담 때문에 사실상 기업 존속이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29일 “규제만 완화되면 당장이라도 공익법인을 세우고 싶지만 정부와 국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모르니 답답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속세법 개정이 정공법이기는 하지만 솔직히 현재 분위기에서 통과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면서 “공익법인 규제라도 완화되기를 기다리는 곳이 제 주변에 많다”고 토로했다.



기업들이 부닥친 현실과는 달리 우리나라에서 상속세와 공익법인 관련 규제는 그동안 ‘금단의 영역’에 가까웠다. 과거 국내 기업들의 업보라고 할 수 있는 정경 유착과 여기서 비롯된 반기업 정서 때문에 누구나 그 문제를 알면서도 막상 이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공론화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업 승계를 사실상 제한해 기업의 지속 가능성을 떨어뜨리는 ‘킬러 규제’를 몇 십 년 동안 방치한 사이 기업과 자본시장에는 커다란 시장 왜곡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고(故) 김정주 넥슨 창업주 가족은 6조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 상속세를 부담할 수 없어 지주사인 NXC 지분 29.29%(4조 7000억 원)를 내놓았지만 비상장 주식인 데다 배당도 어려워 입찰자가 단 한 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고(故) 이건희 삼성 회장이 남긴 유산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들은 12조 원이 넘는 상속세를 납부하기 위해 삼성전자 주식 등 보유 재산을 블록딜로 매각하거나 금융기관으로부터 최대 연 6%에 육박하는 금리로 대출을 받아야 했다.



대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다. 중견·중소기업들 중에는 상속세 때문에 아예 사업을 포기하는 곳도 적지 않다. 국내 가구 업계 1위인 한샘이 경영권을 사모펀드(PEF) 운용사에 넘겼고 동진섬유·농우바이오·락앤락·에이블씨앤씨 등도 끝내 기업을 포기했다. 아예 해외로 짐을 싸는 기업도 늘고 있다. 중견기업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수년 전 제조 업체를 운영하는 중견기업이 승계 문제로 재단법인을 활용한 기업 승계를 검토했지만 현행법에 따라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본사를 홍콩으로 옮겼다”고 전했다. 기업 승계 문제를 단순히 대기업 ‘특혜’로 봐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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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아직도 기업 승계를 일종의 악(惡)으로 보는 시각이 남아 있지만 삼성이 상속세 때문에 해체되고 주식이 물납으로 나와 경매나 기다리는 처지가 된다면 그때는 한국에 더 큰 경제적 재앙이 닥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재판에 출석하고 있다. 연합뉴


그렇다고 미국이나 일본·스웨덴처럼 공익법인을 활용하기도 어렵다.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해 규제 범벅이 된 현행 제도 때문이다. 우리나라 공익법인 관련 규제는 공정거래법·세법 등으로 얽혀 있어 풀어내기 어려운 상태다.

최승재 세종대 법대 교수는 “미국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메타(옛 페이스북)·포드처럼 공익재단을 통해 그룹 지배구조를 형성하고 기업을 영속하면서 사회에 기여하는 집단들이 다수 존재한다”면서 “특히 공익법인의 지분에 대해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MS 창업자인 빌 게이츠는 MS 주식을 출연해 자선 재단을 설립한 뒤 이 재단을 통해 전 세계적인 사회문제 개선에 공헌하고 있으며 마크 저커버그 메타 회장 또한 첸 저커버그 재단을 통해 메타의 의결권 53.7%를 행사하면서 메타버스와 인공지능(AI) 등 미래산업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공익재단의 계열사 주식 취득 때 최대 지분율 20%까지 면세 혜택을 주고 있으며 일본은 면세 지분율 한도가 50%에 이른다. 공익재단을 통해 미래 투자와 기업의 영속성, 세금 문제 등 세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창업자의 기업 지배권을 인정한 대신 사회적 고용과 복지 확충을 맞바꾼 스웨덴 사례에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스웨덴은 1938년 일명 ‘살트셰바덴 협약’을 통해 기업집단의 총수가 상속세 없이 공익 재단에 출연할 수 있도록 허용해 경영권 승계를 보장했다. 대신 해당 기업집단은 배당 수익의 80% 이상을 과학기술 및 의료·대학 등 사회 환원 사업에 투자하고 나머지 20%가량을 계열사에 재투자하고 있다. 이렇게 탄생한 스웨덴 발렌베리재단은 제약 회사인 아스트라제네카와 통신 장비 기업인 에릭손 등을 거느리면서 스웨덴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상호 한국경제인협회 경제산업본부장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공익법인의 의결권 행사 제한 규제는 전면 폐지하고 주식 취득 면세 한도 역시 최소한 미국 수준인 20%까지 높여야 한다”면서 “국내 기업들의 정상적 승계를 도와야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기업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도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서일범 기자·박진용 기자·정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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