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엔리코 마테이





20세기 초에 일찌감치 석유산업을 장악한 나라는 미국과 영국이었다. 오늘날 엑손모빌·셰브런·BP·셸 등 ‘석유 메이저’가 된 양국의 7개 기업들이 석유 이권을 독차지하며 2차 세계대전 승리를 뒷받침했다. 그런데 종전 이후 패전국 이탈리아에서 영미 주도의 석유 질서에 반기를 든 인물이 등장했다. 1953년 설립된 이탈리아 국영 에너지 기업 에니(Eni)의 초대 회장이자 전후 경제 부흥의 일등 공신으로 꼽히는 엔리코 마테이다.



마테이는 에너지 자립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국내 자원 개발과 해외 에너지 확보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세븐 시스터즈’라고 명명한 7개 석유 기업들이 외면하는 중동 약소국이나 아프리카의 소규모·노후 유전을 공략하고 서구의 주적인 소련산 석유까지 사들였다. 1957년에는 산유국에 이익의 75%를 내주는 파격 조건으로 이란과의 계약을 따내 중동 사업의 물꼬를 텄다. 일명 ‘마테이 공식(Mattei formula)’으로 불린 이 수익 분배 방식은 석유 개발 이익의 50%를 가져가던 세븐 시스터즈에 맞서 에니가 시장을 파고들기 위한 승부수였다. ‘착취 대신 협력’을 강조한 그의 전략은 튀니지·모로코 등 아프리카에서도 각광받으며 에니의 시장 영향력을 키우고 이탈리아 경제를 일으키는 기반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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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29일 로마에서 열린 이탈리아·아프리카 정상회의에서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아프리카에 55억 유로(약 8조 원)를 투자하는 내용을 담은 ‘마테이 계획’을 발표했다. 마테이처럼 비약탈적 협력 관계로 아프리카 발전을 지원하겠다는 새로운 외교 전략이다. 그럴듯하게 포장했지만 멜로니 총리의 노림수는 아프리카 국가들의 협력을 구해 에너지 공급망을 안정화시키고 불법 이민자를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마테이까지 소환한 전략이 성과를 올릴지는 미지수다. 다만 ‘검은 대륙’을 둘러싼 글로벌 자원 확보 경쟁은 더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도 자원 공급망 다변화와 교역 시장 개척을 위해 아프리카와의 경제 협력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신경립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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