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피플

“사막이 준 지혜, 퇴직 후 인생 개척에 큰 힘” 사막 마라토너 김경수

40살, 사하라 사막으로 떠나

17년간 6400㎞ 사막과 오지 횡단

퇴직 후 유튜버이자 명강사로 활동

“내가 지닌 역량 과소평가 말길”


1987년 갓 제대한 청년이 있었다. 전우들은 다니던 학교로 돌아가거나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갔지만, 그에겐 갈 곳이 마땅치 않았다. 고등학교를 중퇴한 그를 받아주는 곳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살 길이 막막했던 그는 헌책방을 찾았다. 중학생용 참고서 ‘영어완전정복’을 집어 들었다. 어머니께 받은 500원으로 책값을 치렀다.


책에는 이전 주인이 공부하던 흔적이 잔뜩 남아있었다. 문구 하나가 그의 눈에 들어왔다. ‘최후의 승리는 부단히 노력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은총이다.’ 희망을 느낀 그는 이 문구를 가슴 깊이 새기기로 했다.

6개월이 흘렀다. 그는 검정고시와 대학 입시, 공무원 임용 시험에 연달아 합격했다. ‘일타삼피’였다. 누군가 낙서하듯 적어뒀던 헌 책 속의 문구 하나가 한 청년의 인생을 바꿔 놓은 것이다. 바로 김경수(60)씨 이야기다.

김경수씨가 지난해 8월 세종연구소 세종국가전략연수과정에서 ‘사막에서 길을 묻다’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사진 제공 = 김경수김경수씨가 지난해 8월 세종연구소 세종국가전략연수과정에서 ‘사막에서 길을 묻다’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 사진 제공 = 김경수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으로 믿었지만, 삶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김씨가 퇴직한 2020년 2월,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쥐어 삼켰다. 세워 놓았던 계획은 어그러졌고, 어떻게 삶을 꾸려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김씨가 고민 끝에 선택한 것은 유튜브였다. 그는 “유튜브 영상이 인기를 얻고 조회 수가 높아지면 광고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얘기를 얼핏 듣고는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유튜브 채널을 열었다”고 말했다. 촬영부터 편집, 자막 제작까지 모두 그의 몫이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학원을 갈 수도 없었기에 꼬박 1년을 휴대전화와 씨름하며 익히고 또 익혔다. 영상 소재로는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얘기를 다뤘다. 오랜 취미인 등산부터 30년 공직 생활을 거치며 쌓은 노하우까지 닥치는 대로 영상으로 만들었다.

그러던 중 소위 ‘빵’ 터지는 영상이 등장했다. 공직 생활의 소회를 담은 내용이었다. 이 영상을 본 한 기관 담당자로부터 연락이 왔다. “공무원을 대상으로 보고서 쓰는 방법을 강의해보자”는 제안이었다. 강의 경험이 전혀 없던 그였지만 일단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르고 따질 처지가 아니었다. “강의 시작까지 남은 2개월간 시중에 나온 강의 관련 책이나 자료를 죄다 찾아봤어요. 읽어보니 현실과는 다소 차이가 나는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그 점을 제 포인트로 삼았지요.”

방에서 홀로 유튜브 영상을 찍을 때의 열정을 강의안을 짜는데 쏟았다. 첫 강의를 마치고 나니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절실한 마음으로 노력한 덕분이었을까. 2020년 1건으로 시작한 강의 제안이 지난해 141건으로 늘었다. 유튜브 조회 수를 늘리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은 어느새 본업이 됐다. 홀로 시작했던 유튜브 채널 ‘경수생각tv’도 구독자가 어느덧 2만 명에 가까울 만큼 성장했다.



마흔 살의 새로운 도전, 사막·오지 레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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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에게는 또 다른 ‘타이틀’이 있다. 사막과 오지를 달리는 ‘레이서’다. “2001년쯤이에요. TV에서 우연히 사막을 달리는 사람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보고 완전히 빠져들었어요.”

그는 매일 퇴근 후 2시간씩 중랑천을 달렸다. 그렇게 체력을 기른 그는 2003년 사하라 사막으로 떠났다. 지인들의 만류를 뒤로 하고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서울에서 대구까지 거리는 약 240km. 사막 레이스는 그 만큼의 거리를 두 다리로 달리는 경기다. 50도에 이르는 뜨거운 태양 아래 제대로 걷기도 힘든 모래사막 속을 15kg 배낭을 메고 시속 8km 정도로 달려야만 완주할 수 있다고 한다.

사하라 사막 레이스에 성공한 그는 세계 각지의 사막과 오지에 잇따라 도전했다. 2005년 중국 고비사막(253km)에 이어 2006년 칠레 아타카마사막(252km), 2009년 남아프리카의 나미브사막(260km), 2013년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정글(220km) 등이 그가 거친 곳들이다. 이렇게 그는 17년 간 사막 8곳과 오지 9곳을 횡단했다. 두 발로 달린 거리만 6400km가 넘는다.

2005년 중국 우루무치 지역의 고비사막에서 5박 7일 동안 253k㎞ 레이스 중 시각장애인과 함께 모래언덕 빅듄을 넘어서는 모습. / 사진 제공 = 김경수2005년 중국 우루무치 지역의 고비사막에서 5박 7일 동안 253k㎞ 레이스 중 시각장애인과 함께 모래언덕 빅듄을 넘어서는 모습. / 사진 제공 = 김경수


무엇이 김씨를 사막으로 인도했을까. 어려움을 거친 뒤에 얻는 보상 같은 짜릿한 감정 때문이 아닐까. “볼리비아에 갔을 때에요. 정말 극한 상황에서 힘을 짜내 몇 걸음 더 걸으니 지평선과 맞닿은 우유니 소금 사막이 눈앞에 펼쳐지더군요.”

사막에서 얻은 경험이 그에게 선사한 지혜도 무시할 수 없을 터. 그는 사막을 ‘삶의 응집소’라고 했다. “모래 바람이 사정 없이 몰아칠 때면 폭풍이 지나갈 때까지 바닥에 엎드린 채 기다리며 버티고, 정말 필요한 것만 챙겨 넣은 가방에서도 체력을 아까기 위해 덜 소중한 것을 다시 추려낼 줄 알아야 하죠. 다른 선수들이 아무리 나를 앞질러 가더라도 동요하지 않고 내 페이스대로 갈 줄 아는 능력도 필요하고요.”

2014년 볼리비아 우유니사막 171㎞ 레이스 중 잉카문명 이전의 고대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넘어 우유니 사막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 / 사진 제공 = 김경수2014년 볼리비아 우유니사막 171㎞ 레이스 중 잉카문명 이전의 고대 흔적이 살아 숨 쉬는 알티플라노 고원지대를 넘어 우유니 사막을 향해 질주하는 모습. / 사진 제공 = 김경수


김씨는 “중장년들에게 ‘본인의 역량을 과소평가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경험한 모든 것들이 소중한 자산이자 제2, 제3의 인생을 살아갈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제너럴리스트’로 평가 받는 공무원 역시 충분히 ‘스페셜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김씨가 퇴직 후 시작한 유튜브의 경우, 공무원이 겪는 고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후배’ 공무원들에게 도움이 되는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가 전하는 콘텐츠나 강의에 담긴 공문서와 보고서 잘 작성하는 방법, 공직생활의 노하우, 악성민원 대처법 등은 모두 그가 30년 간 공직에 있었기에 잘 전할 수 있는 내용이었다.

코로나19 확산과 강사일이 맞물리면서 그의 사막 레이스도 ‘잠시 멈춤’ 상태다. 하지만 김씨는 70세, 80세에도 사막 레이스에 계속 도전할 생각이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사막 레이스에 참가할 때마다 사람들은 제게 ‘미쳤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는 그게 더 좋습니다. 미쳤다는 말을 들어야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 믿거든요.”


정예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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