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코로나19 숨은 영웅 '에크모' 험난한 국산화 도전기 [전문가 칼럼]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

심장·폐 기능 심각한 손상 시 쓰이는 생명유지장치

국내서 350여 대 사용 중인데 소모품도 전량 수입

삼성서울병원·강원대 등 국내 첫 인공폐 시제품 개발


코로나19가 전세계를 집어삼켰던 2020년 미국 등 선진국을 비롯해 많은 국가에서 인공호흡기와 중환자실 병상이 부족해 사망한 환자들이 즐비했다. 한국이 상대적으로 낮은 사망률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다행스럽게도 국산 인공호흡기를 개발 및 생산하는 업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인공호흡기 품귀 현상이 벌어졌을 때도 별 문제없이 버텼고 수출로 국위선양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인공호흡기 못지 않게 활약한 의료기기가 있다. 흔히 앞글자를 따 에크모(ECMO)로 불리는 체외막산소공급(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ion) 장치다. 에크모는 코로나19는 물론 사스(SARS), 메르스(MERS) 등 유행성 호흡기질환이 큰 문제가 됐을 때마다 중요성이 부각되며 일반 대중들에게 생명유지장치로 잘 알려졌다. 혈액 펌프, 인공 폐, 혈액 수송 회로, 컨트롤러 등 기기와 소모품이 결합된 형태다. 중증 폐렴이나 폐 부전, 심인성 쇼크, 심정지와 같이 심장과 폐의 기능이 심각하게 손상된 상황에서 쓰인다.



그런데 현재 국내에서 사용 중인 350여 대의 에크모 장비와 소모품은 100% 수입품이다. 특히 호흡기질환의 대유행과 원자재 및 물류 비용 상승 등이 맞물리면서 공급 부족 및 수입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이 커지고 있다. 선진국의 대열에 당당히 들어선 한국이 이렇게 중요한 의료장비를 전량 수입에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에크모 국산화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왼쪽)가 앰뷸런스 앞에서 에크모 이송팀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에크모 국산화 개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왼쪽)가 앰뷸런스 앞에서 에크모 이송팀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가까운 일본은 에크모를 포함해 중환자 치료에 쓰이는 대부분의 의료기기와 재료들을 완전 국산화했다. 국내에서도 과거 혈액 펌프를 국산화해 에크모를 개발한 사례가 있었으나 의료 현장에서 널리 사용 가능한 수준에는 이르지 못했다. 인공 폐 같은 핵심 부품의 경우 개발에 성공한 사례가 전무하다.

관련기사



에크모 국산화를 가장 어렵게 하는 요소는 혈액 산화기라고 불리는 인공 폐와 혈액 펌프라는 핵심 부품이다. 두 부품은 고도의 기술과 정밀한 제조 공정이 필요하다. 생체 적합성과 안전성도 고려돼야 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020년에 시작된 범부처 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휴대형 심폐순환 보조장치(에크모) 개발 사업'을 통해 국내 에크모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휴대성과 범용성을 갖춘 혁신적인 에크모를 개발하기 위해 기획됐다. 실제 심장과 유사한 박동성을 유지하면서 효율적으로 산소와 혈류를 공급하는 장비를 개발하는 게 목표다. 수입품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을 낮추고 좌심실 후부하를 줄여 에크모의 활용 범위를 확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응급 환자를 이송하는 앰뷸런스 안에서나 재해 현장에서도 사용 가능하도록 개발 작업이 진행 중이다. 에크모의 국산화 성공 시 응급 상황에서 더욱 효과적인 활용이 가능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삼성서울병원은 2020년에 시작된 범부처 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휴대형 심폐순환 보조장치(에크모) 개발 사업'을 통해 국내 에크모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삼성서울병원은 2020년에 시작된 범부처 전주기의료기기연구개발사업단의 '휴대형 심폐순환 보조장치(에크모) 개발 사업'을 통해 국내 에크모 국산화에 도전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삼성서울병원은 강원대학교, 시지바이오, 인성메디칼 등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국내 최초로 인공 폐 시제품을 개발했다. 동물실험을 통해 안정적인 성능을 입증한 상태다. 혈액 펌프에 대해서도 심장의 부담을 최소화하는 혁신적인 구동 원리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3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 30여억 원의 예산 내에서 이뤄진 성과라는 점에서 더욱 고무적이다. 수입산 에크모를 10대 정도 구매 가능한 수준으로 연구진들이 불철주야 노력한 덕분에 가능했다. 연구진들은 장비의 성능을 검증하기 위해 30분마다 혈액검사를 하면서 72시간 연속으로 에크모를 달고 있는 돼지와 함께 밤을 샌다. 일반적인 의료기기 개발과는 차원이 다른 어려움들을 헤쳐 나가고 있다.

에크모 국산화 연구는 이제 걸음마를 벗어나 장비의 안정화, 고도화, 상업화라는 목표를 향해 뻗어 나가는 단계다. 그동안 에크모 개발 과정에서 항응고 표면 코팅, 산소제어 기술, 의료용 중공사 처리 방법 등의 기술을 터득했다. 이러한 기술은 향후 심장 수술과 장기이식, 혈액 투석 등 많은 관련 분야로 파급될 것이 분명하다. 또 기기 개발 과정에서 얻은 경험과 지식은 중환자실에 입원하는 환자들이 더 나은 치료를 받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이러한 성과들이 계속 이어지려면 정부의 끊임없는 지원이 뒷받침 돼야 한다.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성원도 필요하다.

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조양현 삼성서울병원 심장외과 교수. 사진 제공=삼성서울병원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