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공모 회사채 시장을 찾은 국내 건설사들이 기존 목표 액수보다 몇 배나 많은 주문액을 확보하며 자금 조달에 성공했다. 다만 업계 전반에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우려가 다시 확산한 상황이라 조달 금리 상승으로 인한 금융 부담은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4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롯데건설은 지난달 31일 수요예측에서 3440억 원어치 매수 주문을 받고 오는 7일 2000억 원 규모의 회사채를 발행한다. 모회사 롯데케미칼의 지급 보증, 민평 금리(민간 채권 평가사들이 평가한 기업의 고유 금리) 대비 최대 70bp(1bp는 0.01%)까지 열어둔 희망 금리 범위 상단, 전액 1년물 발행 등 시장 친화적인 조건 등을 토대로 투자금을 성공적으로 모으게 됐다는 평가다.
공모 건설채 발행은 지난달 22일 현대건설(000720)이 회사채 수요예측을 진행하면서 지난해 9월 초 이후 약 넉달 만에 재개됐다. 현대건설이 1600억 원 모집에 6850억 원의 매수 주문을 받아 3000억 원으로 발행액을 늘렸고 SK에코플랜트는 1300억 원 모집에 70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해 2560억 원으로 증액 발행했다. 지난해 HL D&I(014790) 수요예측 미매각(주문액이 모집액에 미달)을 시작으로 한신공영(004960)·신세계건설(034300)·KCC건설·한양 등이 줄줄이 수요예측 참패를 기록했던 것과는 상반된 결과다.
건설채 시장에 훈풍은 불고 있지만 조달 금리가 민평 금리보다 높게 형성되면서 각사의 금융 부담은 커진 상태다. 현대건설·SK에코플랜트·롯데건설 모두 발행 조건을 민평 금리보다 높은 수준에 맞췄다. 롯데건설의 경우 롯데케미칼 덕분에 ‘AA’급의 신용도로 평가받았음에도 민평 금리보다 60bp 높은 수준에서 물량을 채웠다. 롯데건설의 1년물 발행 금리는 연 4.6% 안팎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금리가 쉽사리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중소형 건설사들의 자금 조달난이 한 동안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현재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건설사들은 대기업 그룹에 속해 모기업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있거나 부동산 PF 부실 리스크가 적은 우량 회사인 경우가 대다수다.
실제로 어느 정도 체급이 있는 KCC건설조차 지난달 30일 625억 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기 위해 서울 잠원동 본사 사옥을 담보로 제시했다. KCC건설은 한국자산관리공사가 지급보증을 선 500억 원어치는 연 4.2%, 나머지 125억 원어치는 연 7.3% 금리로 발행했다. 신용등급 ‘A’급인 신세계건설은 지난달 29일 연 7.5% 금리로 2년물 1000억 원(300억 원은 연 7.6%)을 공모채가 아닌 사모채로 발행했다. 신세계건설 회사채 2년물 민평 금리가 2일 연 6.745%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약 75bp 높은 수준이다. 이수건설도 같은 달 17일과 26일 만기를 3개월, 6개월, 1년으로 쪼개 총 150억 원어치 물량을 연 7.7~8.0% 금리의 사모채로 발행했다.
김기명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체 회사채 발행 시장은 지난달 월말로 갈수록 강세를 보였지만 증권·건설 업종만 유독 약세를 보였다”며 “금융 당국이 강도 높은 부동산 PF 구조조정 추진 방침을 밝히면서 관련 업종에 대한 우려가 다시 부상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