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부당 합병·회계 부정 혐의에 대한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서 촉발돼 검찰로 이어졌다. 하지만 검찰은 수사에 ‘총력전’을 벌이고도 ‘3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만 남겼다.
이 회장에 대한 구속 영장 기각·대검찰청 수사심의위원회 수사 중단 등 결정에 이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하면서 ‘무리한 수사로 기업 흔들기에 나섰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5-2부(박정제·지귀연·박정길 부장판사)는 5일 자본시장법상 부정 거래 행위,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분식회계 등 19개 혐의로 기소된 이 회장에게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이 이 회장을 기소한 지 1252일 만이다. 법원은 함께 기소된 최지성 전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실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 장충기 전 미전실 차장 등 나머지 피고인 13명에게도 ‘죄가 없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이 회장을 둘러싼 불법 경영 승계 의혹 등을 겨냥해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은 2018년 12월 1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삼성바이오로직스·삼성물산 등을 압수수색하면서 강제수사를 시작했다. 이후 이 회장을 두 차례나 불러 조사했다. 각각 17시간이 넘는 ‘마라톤 조사’였다. 하지만 구속 수사라는 첫 관문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법원이 지난 2020년 6월 9일 이 회장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 실질 심사)을 열고, 그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사유는 ‘구속 필요·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구속할 사유가 인정되지 않는 만큼 혐의에 대해서는 재판 과정에서 심리·결정하는 게 타당하다는 판단이었다. 함께 청구된 최지성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부회장), 김종중 전 미전실 전략팀장(사장) 등도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됐다.
검찰은 이 회장 측 요청으로 열린 대검 수사심의위에서도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수사심의위에서는 사전 선정된 15명 가운데 13명(불참 1명, 1명 직무 대행)이 참석했다. 이 가운데 10명이 ‘수사를 중단하고 이 회장을 재판에 넘기지 말아야 한다’는 데 찬성표를 던졌다. 예상 밖의 압도적 우세 속에 검찰이 또 한 번 패배를 당하는 순간이었다. 수사심의위 결정의 경우 권고적 효력이라 검찰이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다만 2018년 초 해당 제도 시행 이후 당시까지 여덟 차례 열린 수사심의위 권고를 모두 따랐던 만큼 검찰이 느끼는 부담은 컸다. 하지만 검찰은 “국민적 의혹이 제기된 사건으로서 사법적 판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며 3개월 뒤인 2020년 9월 1일 이 회장을 전격 기소했으나 106회 재판 끝에 나온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검찰은 이 회장을 기소하면서 그가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삼성그룹 미전실이 2012년부터 추진한 각종 부정 거래와 시세조종 등에 관여했다는 혐의를 담았다. 특히 유리한 합병 비율을 만들기 위해 △거짓 정보 유포 △중요 정보 은폐 △허위 호재 공표 △주요 주주 매수 △국민연금 의결권 확보를 위한 불법 로비 등을 공소 사실에 담았으나 법원은 오히려 ‘신성장 동력 확보를 위한 목적으로 합법적 과정에 따라 이뤄진 합병’이라는 이 회장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법원은 우선 이 회장의 승계나 지배력 강화를 위해서만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봤다. 합병을 통해 주주에게 손해를 끼쳤다고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고 제일모직의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관련한 거짓 공시, 분식회계 등도 죄가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 사실의 핵심인 ‘경영권 승계’의 불법성 자체가 무너지자 이 회장에게 적용된 혐의 100%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판단되면서 무죄로 판결이 난 셈이다. 법조계 안팎에서 이 회장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두고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거나 ‘시작만 요란했을 뿐 알맹이는 없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