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독립의 아이콘이자 민주진보당의 주류인 ‘신조류파’ 적자 라이칭더 후보가 40.05%를 득표해 제16대 대만 총통에 당선됐다. 라이 후보가 독립 대 통일, 민주 대 독재, 친미 대 친중 구도에서 독립·민주·친미를 선택해 승리했다는 평가가 있으나 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통일 대 독립 논의는 기성세대가 무대 밖으로 물러나면서 약화됐고 대만 민주화를 향한 열망도 이성적으로 바뀌었으며 무엇보다 실용적 경향을 보인 Z세대의 유권자들은 탈이데올로기화됐다. 이번 선거에서 대만민중당의 커원저 후보가 이 공간을 파고들어 26.46%를 득표하면서 제3세력으로 등장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특히 총통 선거와 동시에 실시된 총선(입법위원)에서는 전체 112석 중 국민당이 52석을 차지해 여소야대가 나타났고 실제로 2월 1일 열린 입법원장 선거에서 국민당의 한궈위 위원이 당선됐다.
무엇보다 새 정부는 성장의 지체, 만성적 저임금, 불평등의 심화 등 민생 이슈에 대한 불만을 다독거려야 한다. 양안의 디커플링과 대만 정체성 강화를 주장하는 독립 지지 그룹과 ‘누구도 대만 독립을 말할 수는 있으나 행동에 옮길 수 없는’ 현실 정치를 중시하는 그룹 사이에서 절묘한 균형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대외적으로는 ‘대만의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조 바이든 미국 정부와 정책 공조를 강화해야 하고 대만 독립 분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예민하게 주목하는 시진핑 중국 정부와의 관계도 재설정해야 한다.
라이칭더 정권을 마주한 중국은 세 가지 복합 딜레마에 빠져 있다. 즉 민진당과의 효과적인 소통과 협상을 통해 대만해협 정세를 안정시키기 어렵고 국민당과 연계해 양안의 평화와 통일 과정을 추진할 수도 없으며 미국이 대만 카드를 통해 중국을 압박하는 기조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은 일단 관망 모드를 선택했다. 대만 선거 직후인 1월 15일 공산당 중앙위원회 기관지인 ‘추스(求是)’에는 대만 문제에 대한 이례적 문장이 소개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7월 당중앙 ‘통일전선공작회의’에서 발표한 연설이 그것이다. 이 연설에는 중국이 그동안 강조해온 “무력을 통한 통일을 배제하지 않겠다”는 부분이 빠져 있고 “대만 독립이라는 분리주의 행위에 반대하고 대만의 애국 통일 세력을 발전시키고 강화해야 하며 홍콩·마카오·대만 및 해외에서 통일전선 활동의 역할을 발휘해 민심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됐다. 이것은 2016년 차이잉원 정권 출범 당시의 강경 조치가 역효과를 가져온 학습경험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보면 당분간 중국은 대만이 통일 원칙을 수용한다면 고도 자치를 허용할 것이라는 선전전을 강화하는 한편 대만 독립 정치 세력과 일반 정치인, 대만의식(대만의 정체성)과 대만 독립, 대만 정치인과 대만 주민을 최대한 분리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대만의 미래 정치 행방을 결정하는 세력으로 등장한 Z세대를 향해 다양한 미디어 플랫폼을 통한 청년 공공외교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양안은 군비 경쟁이 아니라 복지에 기초한 건전한 경쟁이 필요하다는 1970년대 대만 장징궈 총통의 주장을 주목해 일방적 개방을 통해 대만 청년에게 취업과 경제적 기회를 줄 필요가 있다는 견해도 등장했다. 이렇게 보면 중국이 대만 주민을 직접 자극하는 경제제재는 신중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3월 5일부터 열릴 예정인 중국의 전국인민대표대회, 5월 10일 대만의 총통 취임식, 11월 미국 대선 등의 정치 일정에 따라 양안 관계가 출렁일 가능성은 여전하다.
이러한 양안 관계 변화는 한중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일단 우리 정부는 영국이나 일본과 달리 당선 축하 인사를 관례대로 대만 대표부를 통해 전달했고 대만 총통 선거에 대한 메시지도 “대만해협의 평화와 안정이 유지되고 양안 관계가 평화적으로 발전해나가기를 기대한다”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다분히 한중 관계의 파장을 고려한 것이다. 차제에 우리의 대만 접근법도 가치와 주권을 섬세하게 분리하고 최대한 절제된 용어를 통해 연루의 위험을 피하며 경제와 민간 교류를 보다 활성화하는 경험을 축적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