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충자 유구무언(不忠者 有口無言)의 속죄하는 마음으로 나는 지난 세월을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고(故) 장태완 전 수경사령관)
12·12 쿠데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누적 관객 수 1300만명을 돌파하며 역사적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주축이 된 인물들의 회고록 또한 출판계를 두드리고 있다.
영화에서 정우성 배우가 연기한 이태신 전 수경사령관의 실존 인물인 고(故) 장 전 수경사령관의 회고록 ‘12.12 쿠데타와 나’는 출간 이후 뜨거운 반응을 얻고 있다. 이 회고록은 1993년 출간됐다가 절판된 후 30년 만에 재출간됐다.
1950년 12월 소위로 임관한 저자의 군 생활부터 시작해 박정희 대통령의 비호 아래 커 나간 군부 내 사조직 ‘하나회’를 비롯해 10·26 사태와 12·12 군사반란을 조명한다. 회고록에서 장 전 사령관은 12·12 쿠데타를 두고 “전 장교의 0.05%도 안 되는 소수의 12·12 군사반란 주모자 및 주동자들은 조국 수호와 민주 발전을 위하여 거룩하게 산화한 수많은 호국 영령의 명예를 더럽혔다”고 강력히 비판한다.
저자는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겪게 된 시련에 대해서도 침묵을 깼다. 저자의 부친은 아들이 쿠데타 세력을 막는 데 실패하자 “예부터 역모자들의 손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게 우리의 역사다. 내가 자식보다 먼저 떠나야 한다”라고 말하며 문을 걸어 잠근 채 식사를 끊고 막걸리만 마시다 세상을 떠났다. 1982년 1월 당시 서울대생이었던 장 전 사령관의 아들은 실종된 지 한 달 만에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다. 그는 당시 상황을 술회하며 “얼어붙은 아들의 얼굴에 내 얼굴을 비비대면서 흐르는 눈물로 씻겨 주었고, 입으로는 아들의 눈부터 빨아 녹였다”며 애통했던 심경을 전했다.
영화 속에서 정해인 배우가 연기해 화제를 모은 오진호 소령의 실존 인물인 고 김오랑 중령의 아내 고 백영옥씨가 쓴 ‘그래도 봄은 오는데’도 재출간됐다. 백씨는 남편의 죽음 이후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실명 진단을 받았으나 남편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운동을 계속했다. 실명으로 인해 직접 글을 쓸 수 없던 저자는 카세트테이프 20개에 달하는 분량으로 회고록을 구술했고, 이를 출판사 편집자들이 기록·편집해 1988년 책으로 펴냈다. 하지만 김오랑의 죽음을 은폐하고 싶었던 노태우 정권은 책 배포를 막았다. 35년 가까이 빛을 보지 못했던 책이 다시 독자들을 찾게 됐다.
책에는 김오랑 중령과의 만남과 사랑, 12·12 당시의 상황 등이 상세히 담겼다. 아울러 남편 죽음 이후에 찾아온 실명과 고통, 그리고 그 과정을 극복하는 내용도 수록됐다. 백씨는 “연일 봄이 올 듯하면서 주춤대는 가운데서도 겨울은 그 기세가 꺾이고, 뜨거운 예감으로 봄이 문턱에까지 와 있음을 느낀다”며 봄은 올 것이라는 확신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