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전공의 파업 대책을 내놓으라는데 뾰족한 대책이 있겠습니까. 전공의들을 붙잡고 파업을 하지 말아달라고 사정해보는 수 밖에요.”
익명을 요구한 서울 한 대학병원 고위 관계자는 8일 “(전공의 공백을) 전임의로 채우라지만 애시당초 그럴 여력이 안 되서 이런 사단이 난 것 아니냐”며 한숨을 내쉬었다.
파격적인 의대 증원 결정에 반발해 설 연휴 이후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선 수련병원들이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를 꾸리고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따른 진료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응책을 연일 쏟아내면서 수련병원들을 옥죄고 있지만 당장은 특별한 움직임이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 소위 ‘빅5’로 불리는 서울 상급종합병원 5곳은 대한전공의협의회의 요청에 따라 총파업 참여 찬반 투표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까지 빅5 병원 중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아산병원 등 4곳이 파업 참여 투표 결과 가결됐다. 서울성모병원은 진료과 별로 파업 참여 여부를 논의 중이다. 이들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만 합쳐도 전체 전공의(약 1만5000명)의 약 15%를 차지한다.
대전협은 오는 12일 온라인으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어 의대 증원 등 의료 현안 대응 방안을 논의할 방침이다. 이날 각 병원의 의견을 취합해 파업 여부와 일정이 구체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대전협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가 전공의들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는 여러 의사단체 가운데 파업 시 가장 파급력이 크기 때문이다. 지난 2020년 문재인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을 당시 개원의 파업 참여율이 한 자릿수에 그친 반면 전공의 파업 참여율은 약 80%에 달했다.
일선 병원들은 설 연휴 이후 진료 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인다는 방침이지만 전공의들이 파업에 나서면 당장 예약 환자 이외의 외래진료가 어렵다. 곧이어 신규 입원 및 외래 환자의 접수가 중단되고 응급실, 중환자실 입원마저 막히면서 진료 대란이 벌어지는 건 시간 문제라는 게 병원들의 중론이다. 전공의 파업이 장기화할수록 전임의, 대학교수들의 연쇄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의대생들과 긴밀하게 공조하되, 대한의사협회와 거리를 두겠다”고 못박았다. 다만 지난 5일 전국 140개 병원의 전공의 1만 명 중 88.2%가 집단행동 의사를 나타냈다는 조사 결과를 공개한 만큼 총파업에 나설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정부는 의료계의 집단 행동 방침에 업무개시명령과 면허취소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태윤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지역 의료 공백과 인구 구조의 고령화로 대한민국의 의료는 심각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며 “지금이라도 무너져가는 의료 체계를 바로잡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에 미래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