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역대급 ‘세수 펑크’로 정부가 예산에서 쓰고 남은 돈을 뜻하는 세계잉여금이 2조 7000억 원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 2% 초반 성장을 예상하고 있지만 건설 투자 급감과 내수 위축, 중동 지역 불안 등으로 경기가 나빠질 경우 나랏빚을 더 늘려야만 하는 상황에 처했다.
기획재정부가 8일 발표한 ‘2023회계연도 총세입·총세출 마감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잉여금(일반·특별회계 합산)은 2조 7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9조 1000억 원)보다 70.3% 감소한 액수로 2019년(2조 1000억 원) 이후 4년 만에 가장 적은 수치다. 기재부 관계자는 “어려운 세수 여건으로 세계잉여금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해 국세 수입은 예산액 대비 56조 4000억 원 감소한 344조 1000억 원으로 집계됐다.
특히 일반회계 세계잉여금은 364억 원에 불과해 정부 회계 시스템이 개편된 2007년 이후 가장 적었다. 일반회계에 잡히는 세계잉여금은 교부세·교부금 정산과 공적 자금 상환기금 출연, 채무상환에 쓰인 뒤 추경 재원으로 활용된다. 세계잉여금을 최종적으로 어떻게 활용할지는 4월 국무회의에서 결정된다.
정부 안팎에서는 지난해 마감 결과를 볼 때 사실상 추가경정예산에 활용할 재원이 없다고 예상하고 있다. 실제 관가에서는 세계잉여금 감소로 ‘국채 발행을 최소화한 추경’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전망했다. 일반회계에 잡히는 세계잉여금은 국가재정법에 따라 교부세·교부금 정산→공적 자금 상환기금 출연→채무상환의 순서로 정산된다. 이후 남는 돈을 추경 재원이나 세입 이입으로 활용하는 구조다. 비록 추경의 주 재원은 국채지만 세계잉여금이 남아 있을 경우 국채 발행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세계잉여금을 어떻게 정산할지는 4월 중 국무회의에서 결정될 예정이다. 다만 각종 정산에 활용하면 추경에 쓸 수 있는 세계잉여금은 사실상 ‘0원’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문제는 총선 이후 경기다. 정부는 지난달 초 ‘2024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며 올해 민간소비 증가율이 1.8%를 나타낼 것이라고 전망했다. 소비 부진이 두드러졌던 지난해(1.8%)와 동일하면서 재작년(4.1%)에 비해 크게 낮은 수치다.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이달 7일 “고금리로 인한 내수 둔화로 다수의 산업이 부진한 상황”이라고 짚었다.
건설투자는 전년(2.7%)보다 크게 부진해 -1.2%의 역성장을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불안과 원자재 가격 고공 행진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2%로 하향 조정한 것도 이 같은 내수·부동산 시장 부진의 영향이 크다는 해석이 나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 정부 지출을 늘리려면 국채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데 이는 현 정부 기조와 맞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 장부상 불용액은 전년보다 3.5배나 불어난 45조 7000억 원으로 집계돼 마찬가지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액수를 보였다. 지방교부세·교부금 감액 조정(18조 6000억 원)과 정부 내부 거래(16조 4000억 원)를 제외한 사실상 불용 규모도 10조 8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지난해 총세입은 497조 원으로 당초 세입예산(534조 원)에 비해 37조 원 미달했다. 총세출은 490조 4000억 원으로 기존에 편성했던 예산 현액(540조 원)과 비교해 49조 5000억 원 모자랐다. 불용액 역시 재정전산시스템인 디브레인이 도입된 2007년 이후 가장 높은 액수를 보였다. 정부는 사업 지출 소요 감소와 예비비 미사용을 고려한 ‘사실상 불용액’이 10조 8000억 원이라고 설명했다. 우석진 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리하자면 세수가 적어 지방에 내려보낼 돈이 없고 빚을 갚기 어려우며 추경으로 쓸 재원이 줄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