팝스타 테일러 스위프트의 순회공연인 '에라스 투어'(The Eras Tour) 실황 영화가 중국에서 약 175억 원의 매출을 올리며 흥행 돌풍을 일으킨 데에 대해 블룸버그 통신이 “시진핑 국가주석의 보수적인 시대에 지친 중국 여성들을 열광시키고 있다”고 10일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에라스 투어' 실황 영화는 중국 전역 약 7000개 스크린에서 상영되며 9500만위안(약 175억원)의 매출을 올렸고 인기에 힘입어 다음 달 1일까지 상영이 연장됐다.
'에라스 투어'는 스위프트의 가수 생활을 시대(era)별로 나눠 영화로, 중간에 스크린에는 ‘1989’라는 숫자가 커다랗게 등장한다. 2014년 발매 당시 1000만 장 이상 팔렸던 스위프트의 다섯번째 앨범 ‘1989’를 뜻하는 것으로, 해당 앨범은 지난해 재발매돼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며 다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블룸버그는 “1989년은 중국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민감한 해”라며 “'1989'라는 앨범 타이틀은 테일러 스위프트의 이니셜인 'T.S.'와 함께 '1989년 톈안먼 광장(Tiananmen Square) 민주화 시위' 유혈 진압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중국의 검열에 걸릴 수 있다는 추측이 제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러나 그러한 논란은 현실화하지 않았고 이 미국 스타는 계속해서 중국에서 새로운 청중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1989라는 숫자 외에도 해당 영화에는 여성들이 젠더 불평등을 비난하는 페미니스트 노랫말을 큰 소리로 따라 부르고, 반짝이는 드레스를 입은 10대들이 성소수자(LGBTQ의 자유를 축하하는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모습도 등장한다고 설명했다.
블룸버그는 “최근 베이징의 극장에서 본 해당 영화가 노래하는 가치들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갈수록 보수적으로 돼가는 여성에 대한 비전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며 “이는 점점 더 엄격해지는 사회적 통제와 공산당의 경직된 기대를 거부하는 젊은 여성들에게 드문 해방구를 제공한다”고 짚었다.
시 주석은 작년 10월 중국 부녀연합에 “출산 증진정책에 바탕을 두고 결혼·출산과 관련해 새로운 문화를 적극적으로 육성하라”고 주문했다.
중국의 출생율이 떨어지자 여성의 가정 내 역할을 강조하고 나선 것으로 시대착오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시 주석은 또한 최고 권력기관인 당 중앙정치국에 최소 1명의 여성 위원을 둔다는 수십년간의 불문율도 깨고 2022년 20기 중앙정치국을 남성으로만 채웠다.
아울러 시 주석 정권은 미투(Me too·나도 당했다) 운동도 초기에 분쇄해버렸다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숴타오(22) 씨는 블룸버그에 '에라스 투어'를 두 번 관람했다면서 “스위프트는 내게 나를 가로막는 것에 대해 아니라고 말할 용기와 힘을 줬다”고 밝혔다.
주쯔(20) 씨는 해당 영화 인기를 설명하면서 "스위프트는 그렇게 정치적이지 않지만,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자신만의 생각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서 최근 몇 년간 탄압에 직면한 성소수자 그룹에 대한 스위프트의 공개적 지지도 잘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영화를 세 번 봤다는 양양저우(29) 씨는 스위프트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에 대해 "내가 그럴 자격이 있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블룸버그는 ‘에라스 투어’ 실황 공연이 중국에서 상영되는 데는 중국 당국이 경제 둔화 속 과도하게 지어진 극장에 관객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