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부동산 공모펀드가 금융시장 위기 뇌관으로 지목되고 있다.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극심한 침체를 겪으면서 펀드 수익률이 1년 새 -80%까지 폭락하면서다. 2026년까지 만기가 도래하는 펀드 자금은 총 8747억 원이다. 올해 만기 규모는 4104억 원에 달한다. 일부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한 가운데 펀드 청산 과정에서 금융사와 투자자 간 첨예한 갈등이 빚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12일 펀드 평가사 에프앤가이드 등에 따르면 주요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의 최근 1년 수익률이 -30~-82%대로 곤두박질하면서 금융·투자 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의 경우 수익률이 -82.17%까지 추락해 펀드의 만기를 당초 지난해 11월에서 이달 말로 연장했다.
만약 만기 때까지 차환(리파이낸싱)을 하거나 다시 만기 연장을 하지 못하면 자산 처분권이 대주단으로 넘어간다. 이 경우 개인투자자가 투자금을 건질 가능성은 크게 줄어든다.
다른 펀드의 상황도 엇비슷하다.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내 오피스에 투자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9-2’는 2016년 펀드 모집 당시 열흘 만에 3000억 원이 팔렸지만 부동산 침체로 지난해 20%가량의 손실을 본 채 건물을 매각했다. 자산 매각 당시 공지를 받지 못한 일부 개인투자자들은 상품의 불완전판매를 주장하고 있다.
올해 만기 도래하는 펀드 규모는 4365억 원(개인 투자 4104억 원,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실 기준)에 이른다. 이후에도 내년 3470억 원(〃2725억 원), 2026년 이후 2532억 원(〃1918억 원)의 펀드가 만기를 맞는다. 수익자 총회를 통한 만기 연장 및 추가 출자 같은 대안이 없는 한 손실이 불가피하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모 당시에는 4~5%대의 배당 수익에 자산 매각 수익까지 노린다는 콘셉트로 개인투자자가 대거 몰렸다”며 “금융사로서는 투자자에 대한 사전 공지 없이 펀드 청산에 나설 수 있어 갈등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공실 없단 말에 투자" 반발에도…금소법 적용 안돼 구제 힘들듯
[해외부동산펀드 초비상]
◆ 개인투자자 무더기 손실 우려
후순위 투자 많아 청산시 피해 커
손실확정 의사결정과정서도 소외
개인투자자들 "불완전판매" 주장
폐쇄형 공모펀드라 배상 어려워
당국은 금융사 충당금 확보 지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 투자자의 불안감이 큰 이유는 펀드가 주로 후순위 투자에 나서 청산 시 피해가 클 수밖에 없고 공모의 특징상 손실 확정 의사 결정 과정에서도 소외되기 쉬운 탓이다.
통상 해외 부동산은 60% 수준의 담보인정비율(LTV)을 인정한 현지 은행의 선순위 대출과 40%의 투자로 이뤄진다. 예컨대 대출 6억 원과 투자 4억 원을 받아 10억 원짜리 건물을 지었는데 부동산 가격이 폭락해 7억 원에 매각한다면 선순위 대출 6억 원을 빼고 후순위 채권자 몫은 1억 원에 불과하다. 후순위 투자자 입장에서는 투자금의 75%인 3억 원이 고스란히 손실로 잡히는 셈이다.
역으로 보면 위험이 큰 만큼 후순위 투자자들에게 돌아가는 수익률은 높다. 2016~2019년 당시 초저금리에 지친 투자자들은 해외 부동산에 투자하면 연 4~5% 배당금에 만기 시 부동산 매각으로 추가 수익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말에 개인·기관 할 것 없이 뛰어들었다. 이는 2018년 이후 개인투자자가 1조 원에 가까운 8747억 원의 자금을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 쏟아부은 것으로 드러난 이유다. 이 가운데 올해 만기 도래하는 펀드 규모만 전체의 47%인 4104억 원에 이른다.
문제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 시장의 초토화에 공모펀드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불완전판매 시비로 이어지고 있는 점이다. 이미 상당수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비상 상태다. 운용 규모가 3750억 원에 이르는 이지스글로벌부동산신탁229의 경우 최근 1년 수익률이 -82.17%(7일 기준)까지 곤두박질치면서 만기를 이달 말까지 3개월 연장하고 대주단의 권리 행사도 유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하나대체투자나사부동산투자신탁1호는 펀드의 존속 기한이 3월 말로 코앞으로 다가오자 운용 기간을 5년 더 연장하는 방안을 내놨다. 다음 달까지 부동산 매각 대금을 펀드 지분에 따라 나눈 뒤 청산해야 하지만 이게 여의치 않자 내린 고육책이다. 이마저도 이달 말 수익자 총회를 열고 합의점을 찾아야 가능하다. 투자금융 업계의 한 관계자는 “공모펀드는 사모와 달리 수익자가 개인이고 투자자 수도 많기 때문에 일일이 총회를 열기 어렵다”며 “이 때문에 증권사가 투자자에게 일일이 알리는 것 없이 부동산을 처분, 손실을 확정함으로서 개인투자자와 갈등을 초래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귀띔했다.
실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소재 오피스 4개 동을 매입가 대비 20% 낮은 가격에 자산 매각을 완료한 미래에셋맵스미국부동산투자신탁9-2의 경우 투자자들이 불완전판매 가능성을 제기하고 나섰다. 한 투자자는 “해외 부동산 펀드는 가입 당시 완전히 새로운 상품이었고 공실 우려가 없어 안전하다는 말만 믿고 거액을 투자했다”며 “손해 보고 건물을 매각해도 판매사는 이미 선취 수수료로 수십억 원을 챙겨 아쉬울 게 없는데 개인들만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피해 배상안 논의는 어렵다는 게 지배적인 시각이다. 부동산 등 투자 기간이 긴 자산에 투자하는 폐쇄형 공모펀드는 유동성 공급을 위해 상장해야 하는데 이때 청약 권유 등 절차를 거쳐야 한다. 따라서 은행 창구에서 고객이 올 때마다 판매하는 주가연계증권(ELS)과는 성격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상장된 지 3~5년이 지난 펀드는 손바뀜이 수시로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다. 투자 설명 의무 등은 투자를 권유하는 단계에서만 성립되기 때문에 금융소비자보호법 적용을 받지 않는다.
다만 금융 당국은 해외 부동산 펀드 설정액의 96%는 사모펀드로 투자자 대부분이 연기금·법인·금융회사 등인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사모펀드 부실이 확산하면 금융기관 건전성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며 "금융사들은 해외 부동산 대체투자와 관련한 손실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충당금을 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금융 당국은 해외 부동산 펀드의 만기 도래 현황이나 환매 관련 모니터링을 진행하고 있다. 앞서 올해 업무 계획을 통해서도 해외 부동산 리스크 부실화 위험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해외 부동산 사업장별 데이터베이스(DB)를 구축해 밀착 모니터링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후순위 투자 비중이 높은 증권사의 경우 해외 부동산 손실을 실적에 대거 반영하고 있다. 미래에셋증권은 지난해 4분기에만 평가 손실로 3500억 원을 반영했고 하나증권은 상업용 부동산 충당금 적립으로 지난해 2710억 원(연간 기준)의 적자를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