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단독] 줄줄이 사라지는 인문학과…‘폐과 기준’ 헌재 간다

'폐과' 경북대 불어교육 재학생들

"폐지 기준·의사결정 대상 모호"

27일 사상 첫 헌법소원 예고

작년에만 비인기과 1118개 퇴출

교육계 "학습권 보호할 법률 시급"

경북대 전경. 사진 제공=경북대경북대 전경. 사진 제공=경북대




대학 구조조정으로 인문·예체능 계열 학과들이 줄줄이 사라지는 가운데 대학생들이 폐과 결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며 처음으로 헌법소원에 나선다. 교육계는 대학의 재정난 심화와 의학·이공계 선호 현상이 맞물리면서 순수 학문이 폐과되는 경우가 갈수록 늘 수 있는 만큼,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되지 않도록 관련 법률 개정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15일 교육계에 따르면 지난해 폐과된 경북대 유럽어교육학부 불어교육전공 재학생 19명은 고등교육법·사립학교법 등에서 폐과 기준과 의사결정 참여 대상 등을 명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다며 이달 27일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 청구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그동안 학내에서 폐과로 피해를 본 재학생들이 대학에 손해배상 등 행정소송을 제기한 사례는 있었지만 국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경북대는 지난해 3월 31일 불어교육전공 폐과를 결정해 교육부가 같은 해 5월 1일 이를 최종 승인했다. 이에 따라 경북대는 2025학년도부터 불어교육전공 신입생을 모집하지 않고 대신 정보·컴퓨터교육과를 신설한다. 경북대 재학생들은 학교 측으로부터 일방적으로 폐과를 통보받았다고 항의해왔다. 몇몇 학생과의 형식적인 면담과 교수회 임시총회만 거쳤을 뿐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강행한 조치라는 것이다.





경북대 재학생들은 현재 법률상 대학의 폐과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점도 문제 삼았다. 현재 고등교육법 제6조 제1항·고등교육법 제4조 제3항 등에서는 학교의 장이 학칙을 제정 또는 개정할 때 충분한 사전 공고와 심의, 공포 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포괄적으로 적혀 있다. 다만 구체적으로 폐과를 결정하는 경우와 관련해서는 언급이 없다. 학교가 재학생들과 충분한 상의를 거치지 않은 채 수익성이나 취업률이 낮은 학과에 대해 폐과 조치를 취할 우려가 큰 까닭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사립학교 제56조와 근로기준법 등에서 학교 구조조정 시 교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처럼 학생들의 기본권과 학습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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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대 측은 “불어 교사 수요 감소 등 교육 환경 변화에 따른 불가피한 대처였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재학생들은 “대학이 추구해야 할 ‘학문의 다양성’에 전면 반하는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프랑스어는 유엔·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들이 공식 언어로 채택하고 있는 데다 국내에서 2025년 고교학점제가 시행되면서 수요가 늘 수 있다는 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도 꼬집었다. 최근 프랑스는 인공지능(AI) 등 첨단기술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만큼 타전공과 융합 시 미래 인재양성에 기여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경북대를 비롯해 최근 국내 대학에서 비인기학과가 통째로 사라지는 일은 점점 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는 지난해 통번역대의 독일어·스페인어·이탈리아어·말레이·인도네시아학과와 독립 학부인 글로벌자유전공학부(자연)를 폐지했다. 명지대도 지난해 철학과·수학과·물리학과·바둑학과를 없앴다.

대학알리미에 따르면 지난해에만 전국 대학에서 1118개(방송통신·사이버·야간대 제외) 학과가 사라졌다. 이는 재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과를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폐과 조치를 단행한 경우만 집계한 것으로 재학생이 한 명도 없어 완전히 폐과된 경우까지 더하면 실제 수치는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교육계에서는 의학·이공계 쏠림 현상이 심화하는 가운데 향후 ‘무전공 선발’까지 확대되면 대학 내 순수 학문이 더욱 외면받아 ‘폐과 사태’가 현실화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봤다. 대학교육연구소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과거 학부제를 운용했을 때도 학생들이 가고 싶어 하는 학과는 대부분 취업이 잘되는 학과였다”며 “무전공 확대로 학생들의 선택을 받지 못한 문사철(문학·사학·철학)이나 순수과학은 구조조정 대상이 돼 사라지고 관련 교수들도 직을 잃게 되는 경우가 늘 것”이라고 분석했다.

헌법소원 심판청구의 대리인인 박상흠 법무법인 우리들 변호사는 “최근 학교 측의 일방적인 폐과 조치로 학생들의 교육받을 권리가 침해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고등교육법·사립학교법 등에서 폐과 기준을 명확히 하고 학생의 기본권과 학습권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할 때”라고 말했다.


성채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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