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파업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예요. 대학병원은 위중한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그 사람들을 두고 파업을 하면 어떻게 하나요?”
서울 시내 ‘빅5 병원(삼성서울병원·서울대병원·서울아산병원·서울성모병원·세브란스병원)’ 전공의들이 집단 사직 의사를 표명한 16일 오전 한 빅5 병원을 찾은 환자들은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김포에서 항암 치료를 위해 남편과 함께 병원을 방문한 정 모(65) 씨는 “위중한 환자들은 한순간에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할 수도 있다”면서 “생명을 놓고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 파업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환자와 보호자들은 당장 치료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특히 빅5 같은 상급종합병원의 경우 질병 치료를 위해 긴 시간을 대기한 경우가 많아 이 점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심장 문제로 이 병원에서 치료 중인 차 모(69) 씨는 “2000명 증원한다고 일을 못 하겠다는 건 밥그릇 싸움 아니냐”면서 “지금 의사 한 명이 보는 환자 수가 너무 많아 예약을 잡으면 일주일이나 두 달 뒤에 볼 수 있는데 집단 사직은 환자 입장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배우자가 류머티즘 질환을 앓고 있어 또 다른 빅5 병원을 찾은 조 모(65) 씨도 “자신들의 권리를 찾는 것도 좋지만 환자들을 생각해야 한다”며 “진료를 하면서 주장하면 몰라도 아예 중단하면 환자들은 다 죽으라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빅5 병원 의사 중 전공의 비중은 39%에 달한다. 전공의들은 필수의료의 핵심인 대형 병원에서도 중추 역할을 맡고 있어 이들이 한꺼번에 병원을 떠나면 의료 공백이 불가피하다. 정부가 2020년 의대 증원을 추진할 당시에도 전공의 80% 이상이 ‘집단 휴진’에 들어가 의료 현장의 혼란이 극심했다.
특히 2020년 전공의 집단 휴진 당시에는 코로나19 팬데믹과 겹쳐 제때 진료나 수술, 입원 치료를 받지 못한 환자들이 속출했다. 당시 부산에서는 약물을 마신 40대 남성이 응급처치를 받을 병원을 찾지 못해 3시간을 배회하다가 울산까지 가서 치료를 받았지만 결국 숨지는 일도 있었다.
정부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비상 진료 대책을 수립하고 철저히 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비대면 진료 전면 확대, 진료보조(PA) 간호사 역할 확대 , 공공의료기관 활용 등을 주요 대책으로 내놓았다. 박민수 복지부 2차관은 이날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브리핑에서 “409개 응급의료기관의 당직 현황 등 필수 진료 기능 정보를 파악하는 한편 소방청 중앙응급의료센터 등과 함께 원활한 이송·전원 체계를 구축하고 전공의가 많은 수련병원의 경우 병원별·지역별 비상 진료 대책을 수립하도록 할 것”이라며 “기관 내에서 필수의료 인력 중심으로 인력을 탄력적으로 재배치하는 동시에 대형 병원은 중환자를 중심으로 진료하고 경증 환자는 인근 병원으로 전원하도록 기본 방침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전공의들이 사직서를 제출하더라도 수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관측도 나온다. 복지부가 이미 각 수련병원에 집단 사직서 수리 금지 명령을 내린 데다 복지부의 명령이 없더라도 병원 차원에서 사직서를 수리할 의지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의대 증원을 추진했던 2020년에도 전공의들이 대거 사직서를 제출하고 병원을 떠났으나 그해 9월 정부가 물러나면서 전공의 전원이 복귀한 바 있다. 다만 박 차관은 “사직서가 수리되지 않았더라도 전공의가 현장에서 진료를 하지 않았다면 업무 개시 명령 위반”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