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길을 못 찾고 정신이 없어 보여요.”
이달 11일 오전 3시 50분께 경남의 한 경찰서로 치매 환자 의심 신고가 접수됐다. 하지만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들은 추운 새벽 거리를 배회하는 노인의 소지품으로는 그의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없었다. 결국 경찰은 노인을 인근 경찰서로 데려와 지문 검색을 한 끝에 인적 사항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지 1시간이 훌쩍 넘은 뒤에야 간신히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할 수 있었다.
일선 경찰관들이 한 해에도 수만 건 이상 쏟아지는 치매 환자, 주취자 신고 등 구호 대상자 신원을 파악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경찰이 ‘휴대용 신원 확인 시스템’을 구축하고 본격적인 운용을 시작했다. 구호 대상자의 신원 확인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 신속한 구조 조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찰은 19일 112 업무용 스마트폰을 활용한 ‘휴대용 신원 확인 시스템’이 이날부터 전국 지구대와 파출소에서 시행된다고 밝혔다. 이 시스템은 소형화된 지문 스캐너를 112 업무용 스마트폰과 블루투스 방식으로 연결해 현장에서 바로 구호 대상자의 지문을 확보한 후 경찰이 구축하고 있는 지문 데이터와 비교해 신속한 검색이 가능하도록 했다. 스마트폰으로 손가락을 촬영하는 것만으로도 지문 인식이 가능하다. 현재 순찰차 1대당 1개씩 배치된 112 업무용 스마트폰과 함께 해당 스캐너도 1대씩 배치돼 활용될 예정이다.
기존에는 구호 대상자를 지문 스캐너가 비치된 인근 지구대·파출소까지 직접 데리고 가야만 신원 확인이 가능했다. 이 때문에 구호 대상자의 인적 사항을 확인하는 데 최소 30분에서 1시간가량 소요됐다. 하지만 휴대용 신원 확인 시스템을 활용하면 신원 확인 소요 시간이 5~6분으로 대폭 단축된다.
주요 구호 대상자로 분류되는 치매 환자와 주취자의 경우 이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최종적으로 보호자 혹은 의료진에게 인계하기까지 일종의 ‘골든타임’이 존재한다. 특히 치매 환자의 경우 당뇨 등 기저 질환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크고 주취자도 장기간 외부 환경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신속한 구호 조치가 요구된다. 김승용 백석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치매라는 것이 과거의 기억은 일부 있다고 해도 현재 본인의 상태를 인지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다”며 “본인이 집을 나갔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는 노인들은 외부 환경에 매우 취약해 신속한 구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치매 환자의 지문을 이용한 신속한 신원 확인이 이뤄지기 위해서는 먼저 환자의 지문을 등록하는 등 사전에 신고 기관에 환자의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치매 환자 지문 등록은 지역 치매안심센터에서 할 수 있으며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실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6월 기준 총 등록 건수는 24만 8788명으로 전체 대상자의 35.2%다.
경찰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지적·자폐성·정신장애인 실종 신고는 총 8440건, 치매 환자 실종 신고는 1만 4667건, 주취자 신고도 39만 6282건 발생했다.
경찰 관계자는 “휴대용 신원 확인 시스템은 현장 실증 과정에서 활용성을 충분히 검증했다”며 “구호 대상자의 보호 조치에 필요한 시간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어 국민의 편익과 행정 효율이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