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직원이 통합 별관 재건축 공사 지연과 관련해 조달청에 시공사를 재검토한 취지를 이해한다는 의견을 건넨 점이 손해배상 소송 패소의 결정적 이유가 된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법조계에 따르면 한은은 조달청을 상대로 “통합 별관 공사 지연에 대한 손해를 배상하라”며 38억 원대 소송을 제기했지만 1심에서 패소했다. 한은은 2017년 서울 중구 통합 별관 재건축 공사 입찰을 조달청에 위임했다. 조달청은 같은 해 7월 계룡건설을 낙찰예정자로 선정해 통보했다. 경쟁 업체인 삼성물산의 시공 예상 단가가 462억 원 더 낮았지만 기술력 등을 고려한 조치였다. 삼성물산은 이에 최저가 입찰 원칙 등을 근거로 기획재정부에 이의를 제기했고 입찰 협의가 잠정 중단됐다. 문제가 불거지자 감사원까지 나섰다. 감사원은 2019년 “예산 낭비가 우려되며 입법 절차가 타당하지 않다”는 의견을 제기했다. 조달청은 이에 기존 입찰 공고를 취소했다.
정부의 이 같은 시공사 재검토로 인해 한은의 통합 별관 재건축은 3년가량 지연됐다. 한은은 이로 인해 외부 건물 임차 등 불필요한 비용 38억 원이 소요됐다며 조달청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다. 법원은 양측의 법적 분쟁과 관련 시공사 재검토 시점 당시 한은의 입장에 주목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한은은 이 시점에 조달청에 상황을 이해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당시 조달청 관계자가 한은을 방문하자 한은의 한 간부는 “아쉬움이 있으나 계약 강행보다는 나은 결정”이라며 “조달청에서 어려운 결정을 해줬다”고 언급한 사실이 확인됐다. 한은 실무자는 또 감사원의 지적이 나온 후 조달청에 “법적 분쟁으로 인해 사업이 다시 지연되지는 않아야 할 것”이라고 당부하는 등 소극적 대응에 그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대안을 찾아달라는 명시적 요구를 하지 않은 것이다.
법원은 이를 두고 “조달청의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위반 또는 고의·과실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선관주의 의무는 수임인(조달청)이 위탁받은 업무 수행에 있어 위임인(한은)의 처지를 대변해 충실해야 한다는 민법상 의무다. 한은조차 조달청의 입장을 일부 이해할 정도로 입찰 선정을 둘러싼 혼선은 불가피했고, 한은이 조달청에 ‘공사 지연이 불가피한 공고 취소는 안 된다’는 명시적 주문을 하지도 않았다는 의견이다.
한은은 이와 관련해 “내부에 의아하다는 의견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며 “판결문을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