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선거 때만 되면 돈 풀기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낸다는 것이 수치로 확인됐다. 상당수가 선심성 복지 공약들로 여야가 나라 살림은 외면한 채 표심만 좇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1일 서울경제신문이 국회 예산정책처 재정경제통계시스템(NABO)을 통해 2020년 1분기부터 2023년 2분기까지 재정수반법률 현황을 분석한 결과 분기당 평균 59.2건의 지출 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재정수반법률은 법 시행 이후 재정지출이나 수입이 발생하는 법안이다. 국회 예정처는 의원 입법 시 비용 추계를 바탕으로 추가 재정 소요를 파악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출 법안은 선거 직전 분기에 몰렸다. 2021년 4월 서울과 부산 시장 보궐선거를 앞둔 2020년 4분기에는 105건의 지출 법안이 통과됐다. 당시 아동복지법과 노인장기요양보험법·사회보장급여법 등의 개정안이 여야 합의로 통과됐다. 법안 통과 뒤 5년간 연평균 지출 금액은 5802억 원으로 추산됐다. 이 중 당국의 재량권이 없는 의무 지출은 3694억 원으로 전체의 63.7%를 차지했다.
이 같은 현상은 선거 때마다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서울과 부산 시장 보선 이후 78건(2021년 1분기)→74건(2021년 2분기)→56건(2021년 3분기)으로 줄어들던 지출 입법은 2021년 4분기 다시 82건으로 증가했다. 이때는 2022년 3월 20대 대통령 선거가 임박한 시기였다. 당시 지출 합계는 4조 2357억 원이었고 의무 지출 비중은 84.4%(9392억 원)였다. 국민기초생활, 노후 준비 지원과 아동복지법 등이 일제히 국회 문턱을 넘었다. 국회를 사실상 개의할 수 없었던 대선 시기에는 지출 법안이 12건으로 대폭 감소했지만 곧바로 이어진 6월 지방선거 국면에 다시 51건으로 늘어났다. 이후 선거가 뜸해지면서 19건(2022년 3분기), 48건(2023년 1분기)으로 지출 법안 통과도 주춤했지만 총선 1년을 앞둔 지난해 2분기 다시 66건으로 증가했다.
문제는 4월에 열리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묻지 마 공약’ 경쟁이 또 시작됐다는 점이다. 현재 복지 부분에서 여당 30조 원, 야당은 46조 원의 재원이 필요한 공약을 내걸었다. 4년 전 21대 총선을 앞둔 2020년 1분기 지출 법안이 97건, 의무 지출 비중이 84.8%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올해도 지출 법안이 상당히 나왔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회 예정처는 정부의 총지출 대비 의무 지출 비중이 2015년 46.4%에서 지난해 52.9%로 상승하고, 2032년에는 60.5%에 달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기초연금과 기초생활보장·건강보험 등 복지 분야의 공약 등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의무 지출 비중은 더 증가할 수밖에 없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구조 개혁 없이 의무 지출이 늘어날 경우 재정 적자 심화와 국가 채무 증가로 악순환을 일으키게 된다”며 “의무 지출 증가와 맞물려 재량 지출이 경직될 경우 경기 대응을 위한 재정의 역할도 축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