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연 3.5%인 기준금리를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9회 연속 금리 동결이다. 물가 불확실성·역대 최대 한미 금리차(2.0%포인트)에 금리 인하는 시기상조라고 판단한 모습이다.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로 직전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한은은 22일 금융통화위원회가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다음 회의(4월)까지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3.5%로 유지해 통화 정책을 운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2월과 4월, 5월, 7월, 8월, 10월, 11월, 올 1월에 이은 9회 연속 동결이다.
물가 불확실성이 여전해 금리 인하에 나서지 못한 모습이다. 지난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8% 올라 6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목표 수준(2%)보다는 높다. 중동 분쟁이 이어지고 있고, 최근 배럴당 80달러 초중반을 등락하는 브렌트유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여럿 제기되는 상황이다.
가계부채 상승세와 주택 매매 심리가 반등할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도 정책 전환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포괄적 가계 빚’을 나타내는 가계신용은 지난해 4분기 8조 원 늘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가계 대출 중 주택담조대출이 15조 2000억 원 늘어 상승세를 이끌었다. 수도권 주택 공급 확대를 골자로 한 1·10 부동산 대책, 광역급행철도(GTX) 확충 발표에 인근 지역을 중심으로 주택 매매 심리가 다소 개선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고려해도 선제적으로 금리 인하에 나설 이유가 없다는 게 시장의 분석이다.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이 정책금리를 5.25~5.50%를 유지하며 양국의 금리 역전 폭은 사상 최대인 2.0%P가 지속되고 있다. 금리 인하 시 외국인 자금 유출, 이에 따른 환율 변동에 시장 불안을 야기할 수 있어 더욱 신중한 모습이다.
시장은 추후 금리 인하 시점에 주목하고 있다. 지난달 금통위 의결문에서 ‘추가 인상 필요성’에 대한 문구가 빠지며 한은은 사실상 추가 금리 인상은 없음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달 금통위 회의 이후 이 총재는 사견을 전제로 “적어도 6개월 이상은 금리를 인하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이런 입장을 유지할 지 이목이 집중된다.
한편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1%,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2.6%로 직전(지난해 11월) 전망을 그대로 유지했다. 예상보다 내수가 부진하지만 수출 호조세가 견조하게 이어지고 있고, 물가 전망 경로도 이전 전망과 비슷하게 흘러가고 있다고 판단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