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한번 맞으면 못 잊어” 직딩들 사로잡은 링거의 비밀 [약 읽어주는 안경진 기자]

장염 등으로 심한 탈수 증상 호소할 때 처방되는 ‘수액주사’

피로회복·숙취해소·미용 용도로도 직장인들 사이에서 인기

체액 불균형 교정 효과…1830년대 콜레라 환자 살린 일등공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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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맞을걸. 나만 몰랐나봐. ”



갑작스런 장염 증세로 저녁 약속을 미뤘던 친구 A는 일주일새 ‘수액’ 신봉자가 되어 있었습니다. 근무시간 내내 두통에 시달리다 퇴근길 심한 오한을 느껴 약국에서 종합감기약을 사다 먹었는데 다음날 새벽부터 묽은 변을 보기 시작해 극한의 고통을 맛봤다는데요. A는 "물만 마셔도 족족 설사를 하는 바람에 기어가다시피 병원을 찾았다가 2시간 만에 걸어나왔다”며 눈을 반짝였습니다. 주삿바늘을 꽂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인데, 얼굴에 혈색이 돌고 메스꺼웠던 증상이 가라앉았다고요. A는 당분간 수액 중독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어 보입니다. 주위를 돌아보면 ‘수액 간증’을 늘어놓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둘째 가라면 서러운 애주가 K는 과음한 다음날 점심시간이 되면 홀연히 사라지곤 하는데요. 회사 근처에서 상대적으로 덜 붐비는 정형외과 한 곳을 발견해 방앗간처럼 드나드는 모양이었습니다. ‘안 맞아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맞아본 사람은 없다’면서 수액을 맞으며 한숨 자고 나오는 게 자신만의 숙취 해소 비법이라는 K의 말에 저도 솔깃할 정도였죠. 이쯤되면 수액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 궁금해지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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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액요법은 장기를 통하지 않고 정맥을 통해 수분과 전해질·영양분을 직접 공급해 체액의 불균형을 교정해주는 치료 방법입니다. 개인의 신체에서 부족한 수분, 전해질의 양과 용도 등을 고려해 포도당, 아미노산 등의 영양분을 첨가해 제조하게 되죠. 1883년 영국의 의사 시드니 링거(Sydney Ringer)가 생리식염수에 칼륨·칼슘·중탄산염 등을 첨가해 혈액 대용액으로 사용한 게 시초라 흔히 ‘링거’라고도 불립니다. 한자어로 표기할 때 ‘수’자는 ‘물 수(水)’가 아닌 ‘실어낼 수(輸)’를 씁니다. 단순한 수분공급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겼다고 해석할 수 있겠죠.

우리 몸 속의 혈액은 용량이 5L 가까이 됩니다. 55%는 액체인 혈장, 45%는 고체인 혈구로 구성되는데, 혈장의 경우 90%가 물입니다. 나머지는 각종 전해질과 비타민·호르몬·효소항체, 혈액응고인자 등으로 구성되는데요. 장염과 같이 탈수 증상이 심할 때 혈액에 필요한 영양분을 외부에서 공급하려면 이러한 구성물의 비율이 맞도록 조절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를 무시한 채 맹물을 주입한다면 농도가 높은 적혈구가 수분을 빨아들여 파괴될 수 밖에 없죠. 수액은 1830년대 콜레라가 전 세계를 덮쳤을 때 사망자 규모를 줄이는 데 기여한 일등공신으로 꼽힙니다. 콜레라는 세계사에서 3번에 걸쳐 엄청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을 일으킨 것으로 유명한 데요. 콜레라에 감염된 환자들은 다량의 설사와 구토, 근육경련이 동반돼 심한 탈수 증상을 호소합니다. 정맥을 통해 수액을 계속 공급하고 바이러스와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막상 수액이 개발된 지 그리 오래 되지 않은 게 문제였죠. 콜레라는 1817년 인도 벵갈 지역의 풍토병으로 시작해 동남아·중동·아프리카 동부까지 퍼지며 제1차 팬데믹을 일으켰습니다. 1829년 유럽에 본격 상륙해 제2차 콜레라 팬데믹이 지속되기까지 사망한 인원은 약 2000만 명에 달합니다.

국내에서는 1945년 해방 직후 콜레라가 전국을 휩쓸면서 수액이 본격적으로 사용됐습니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수액 수요가 높아졌음에도 전량 수입에 의존해야 했는데 JW중외그룹이 1959년 독자 기술로 ‘5% 포도당 수액’ 제품을 선보이며 국산화 포문을 열었죠. 수액을 담는 유리병 수급이 어려워 초창기에는 미군이 사용하던 폐병을 회수해 모래·수세미 등으로 닦아 사용했다고 하니 당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짐작조차 어렵습니다. 얼핏 단순해 보이는 수액주사가 널리 활용되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연구개발(R&D) 노력이 필요했다는 얘기기도 합니다. 물론 수액의 효과를 맹신하는 건 금물입니다. 대부분의 성분이 물이나 식염수로 혈관 내 수분의 양을 단시간에 늘려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평소 심장 기능이 저하돼 있거나 고혈압이 있는 경우 혈관에 부담을 주거나 질환이 악화될 수 있거든요. 피부과 등에서 여러 종류의 비타민·미네랄 등을 섞어 처방되는 수액주사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특정 연예인이 맞고 얼굴이 하얘졌다는 루머와 함께인기를 끌었던 일명 ‘백옥주사’의 경우 글루타치온이 주성분인데 정맥 투여 시 피부 미백 효과가 있다는 과학적인 근거가 충분하지 않거든요. 실제 글루타치온은 약물·알코올중독이나 간염 치료 보조제로 처방되며 피부 미백 용도로 투여할 경우 백반증, 피부 위축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입니다.



안경진 의료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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