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 구조조정에 투입한 자금을 회수한다는 명목으로 은행 등 금융회사들로부터 걷는 돈이 올해 4조 2500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금융회사들의 구조조정에 쓴 비용은 이미 3년 전 모두 충당됐는데도 이렇다 할 이유 없이 사실상 준(準)조세를 받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지난해 역대 최대 ‘세수 펑크’가 발생했을 정도로 나라 살림이 빠듯해지자 금융회사들에 부담을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23일 금융 당국 등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기획재정부는 올해 예금보험공사 소관 예금보험기금채권상환기금(예보채상환기금) 중 4조 2500억 원을 기재부의 공공자금관리기금(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전출금(2조 6000억 원)보다 무려 63.5%나 급증한 규모다. 그간 연 전출 금액이 1조~2조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 이례적으로 크게 늘었다.
예보채상환기금은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구조조정에 투입된 공적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2002년 조성됐다. 당시 정부는 구조조정에 총 69조 원이 필요하다고 보고 정부가 49조 원을 내고 법률을 통해 은행 등 예금보험을 적용받는 부보 금융기관이 2027년까지 매년 예금 잔액의 0.1%를 예보채상환기금에 채우도록 했다.
정부가 은행의 출연금을 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 시작한 것은 전체 구조조정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줄어 2021년 조기 상환이 완료된 후부터다. 예보채상환기금 내 여유 자금이 생기자 초과 납부분을 공자기금으로 전출하기 시작한 것이다. 공자기금은 각종 기금 등의 여유 자금을 통합 관리해 재정융자 등에 활용하고 국채의 발행과 상환 등을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금이다. 정부 관계자는 “예보채상환기금의 공자기금 전출 규모는 매년 금융위와 기재부가 협의해 결정한다”고 설명했다. 결국 은행이 초과 부담한 돈을 나라 살림 전반에 사용하는 것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갚아야 할 빚을 다 청산했는데도 명목상 납부 시점이 남았다는 이유로 돈을 더 내고 있는 것”이라며 “구조조정 비용이 예상보다 줄어든 만큼 금융권이 부담할 몫을 다시 따져보는 게 합리적”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