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3·1절 연휴에도 ‘Go재팬’…일본 여행에 대한 여러 가지 시선들 [최수문 기자의 트래블로그]

일본 여행 크게 늘어…3·1절 연휴에도 항공편 만석

‘NO재팬’ 구호 사라지고 이제는 ‘GO재팬’ 이야기도

어두웠던 과거 역사 뒤로 하고 협력하는 계기로

이주민 건설 국가로 英-濠·美 관계와 韓-日 관계 비슷

현재 절반도 안되는 방한 일본인 관광객 유치는 과제

지난해 9월 인천에서 진행된 ‘한일 대학생 우정더하기+’ 행사에서 기념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지난해 9월 인천에서 진행된 ‘한일 대학생 우정더하기+’ 행사에서 기념 셀카를 찍고 있다. 사진 제공=한국관광공사




안중근 의사가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만주 법정에서 사형 선고를 받은 2월 14일과 일본이 이른바 ‘다케시마의 날’이라며 독도에 대해 다시 도발한 2월 22일까지 지나고 다시 3·1절 연휴를 앞둔 상황에서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이 크게 늘고 있다는 소식이 특별히 눈길을 끈다. 일본행 항공편은 이미 만석이고 여행사들은 오히려 뒤쳐질까 걱정하며 일본 여행 상품을 쏟아내고 있다. “‘NO재팬’은 벌써 끝났고 이제 ‘GO재팬’ 시대가 됐다”든지 “아무리 그래도 3·1절에 일본 여행이 웬말이냐”는 논란도 있다.



통계만 보면 우리 국민의 일본 여행은 거의 ‘국내 여행’ 수준이다. 일본정부관광국(JNTO)에 따르면 지난해 일본을 찾은 전체 외래 관광객 수는 2506만 6100명이었는데 이 중에서 한국인 관광객은 무려 695만 8500명으로, 전체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이는 2위인 대만인 관광객(420만 2400명)의 1.5배 수준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직전인 2019년에 비해서 지난해 전체 방일 관광객 숫자는 21.4%나 적지만 한국인 관광객은 오히려 24.6% 늘어났다고 한다. 특히 전체 순위 5위 이내 국가 중에서 유독 한국만 증가한 것도 독특하다.

올해 들어서도 한국인의 일본 방문은 증가일로다. 지난 1월 방일 외래 관광객 수는 268만 8100명이었는데 이 가운데 한국인이 3분이 1 수준인 85만 7000명이었다. 지난달 매일 3만명의 한국인이 일본의 공항이나 항구에 도착했다는 이야기다. 2위인 대만(49만 2300명)의 2배 가깝다. 덕분에 일본 관광당국은 희희낙락일 듯하다. 올해 1월 전체 방일 외래 관광객은 드디어 2019년 1월(268만 9339명) 수준을 회복했다.

벚꽃이 핀 일본 오사카성의 전경. 사진 제공=하나투어벚꽃이 핀 일본 오사카성의 전경. 사진 제공=하나투어


친일이냐 반일이냐는 의미에서 ‘NO재팬’을 봐서는 안된다는 주장도 있다. ‘NO재팬’은 과거 특정 시기의 일본의 침략적 공세에 대응하는 측면이 있었는데 이런 전제가 해소된 상황에서도 꼭 유지질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일본 여행 자체도 매우 좋은 수준이다. 일본 여행의 해본 사람들은 한결 같다. 일본은 자연이 아름답고 사람들이 친절하고. 환경도 깨끗하다. 한국과도 가깝다. 교통망도 발달돼 있다. 특히 중요하게 최근 기록적인 엔저로 일본 내 상대적인 물가가 엄청 싸졌다. ‘제주도에서 보다 경비가 적게 든다’는 말이 허투루가 아니다. 필자의 경험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12월 ‘남진 일본 콘서트’ 홍보 광고. 사진 제공=모두투어지난해 12월 ‘남진 일본 콘서트’ 홍보 광고. 사진 제공=모두투어


그러면 시선을 먼 과거로 돌리면 어떨까. 역사상 일본이 한국에게 어떤 지역이었냐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일본인과 한국인은 아주 가깝다는 것이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는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내놓으면서 한국과 일본과 관계를 영국과 미국·호주의 관계와 비슷하다고 말한 바 있다. 즉 과거 영국인들이 아메리카와 오세아니아 대륙으로 이주해서 세운 나라가 미국과 호주·뉴질랜드다. 이에 비슷하게 한국인이 이주해 세운 나라가 일본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는 백제가 망한 후 일부가 일본에 정착했다는 소극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고대 일본(정확히는 지금 일본이라고 불리는 열도)에 누가 살았을까. 아이누족 같은 원주민이 살았다. 그러는 가운데 한민족은 만주에서 한반도로 이주해 거주했고 이후 한반도에서 다시 열도로 이주했다. 이러한 추세는 기원 전부터 시작해서 기원 후에도 이어졌으며 백제의 멸망과 통일신라와의 왜의 갈등이 커지게 되면서 중단됐다.



최재석 저자의 ‘백제의 야마토 왜와 일본화 과정’이라는 책은 백제가 멸망한 직후인 서기 700년께 일본 열도 인구의 적어도 80~90%는 한민족(백제인, 신라인, 고구려인, 가야인)이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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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 만주와 한반도는 다시 외세의 침입 등으로 격동의 시대를 보냈지만 일본 열도는 사실상 폐쇄된 상태에서 전통을 유지했다. 지금 일본에서 한국인들이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도 뭔가 한국에 과거에 있었을 법한 것들이 그곳에 남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외국 가운데 일본에서 가장 편한 것 중에 하나는 음식이 입맛에 맞다는 것이다. 중국이나 대만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 지역을 다니다 보면 이 땅이 상당히 살기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진만 빼면 그렇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인구가 크게 늘어난 이유다. 현재 모국의 영국인보다 미국인·호주인(적어도 영국계)가 훨씬 많은 이유와도 비슷하다. 물론 호주와 미국이 영국과 헤어진 것이 100여년 전인 반면 일본과 한국이 선명하게 갈라선 것이 1300년 전이라는 역사적 사실이 지금의 영국-호주·미국의 차이와 한국-일본 관의 차이를 만들게 한 것으로 보인다.

그래도 이런 면들을 종합하면 일본은 한국이 말그대로 친하게 지내야 하는 이웃이다. 이는 불행했던 과거를 감안하고 앞으로 개척해야 할 미래를 상상해도 그렇다. 한국인들의 일본 여행을 꼭 반대할 일을 아닌 것이다.

다만 경제적인 면에서는 생각해 볼 다른 여지도 있다. 한국과 일본간의 여행 수지 격차 때문이다. 한국인이 일본 여행에서 지출이 늘어나는데 비해 일본인의 한국내 소비가 많지 않다면 경제적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방한 일본인 관광객은 231만 6429명에 불과했다. 이는 앞서 말한, 같은 기간 방일 한국인 관광객(695만 8500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우리 관광당국이 방한 일본인 유치에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이른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월 22일 일본 시마네현 마쓰에시에서 이른바 ‘다케시마(竹島·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가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독도향우회 관계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독도향우회 관계자들이 22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규탄하는 결의대회를 열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물론 일본인 관광객 유치에 근본적인 한계가 존재하긴 한다. 일본인 자체가 점점 해외 여행에 소극적이 돼가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사회가 침체하면서 전체적으로 해외 여행이 줄어들었다. 2023년에 모두 962만 4100명이 해외 여행을 떠났는 데 이는 2019년(2008만 669명)의 절반도 되지 않는다. 올해 1월 출국자는 83만 8600명으로, 역시 2019년 1월(145만 2157명)의 절반 수준이다.

반면 한국인은 2023년 2271만 5841명이 출국했는데 이는 2019년(2871만 4247명)의 79% 수준으로 회복했다. 한일의 해외 여행자 숫자는 또 한일간의 전체 인구 격차와도 비교해서 봐야 한다. 일본은 한국인구의 2.5배 수준이다.

여행 수지를 보면 지난해 일본은 2505만 명의 외래 관광객을 받아들이고 962만 명의 일본인이 해외 여행했으니 크게 남는 장사를 했다. 한국이 같은 기간 1103만 명의 외래 관광객을 받아들인 데 그친 반면 2271만 명이나 해외로 나간 것과 비교된다.

한국관광공사는 이에 대해 “엔화 약세와 유가 상승, 국제정세에 대한 불안 등으로 일본인들의 해외 여행 회복세가 저조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일부에서는 “일본인들, 특히 청년들의 해외 여행이나 모험, 도전 의욕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지난 2월 2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163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지난 2월 21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인근에서 열린 1636차 일본군 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 시위에서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과 일본은 우여곡절은 겪었다. 지난 했던 역사는 대부분이 알고 있으니 여기서 재론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하지만 중요한 한가지는 덧붙여 말해 둘 필요가 있다.

한일 비교에서 고대와 중세를 걸쳐 한국인들의 소득수준이 일본인보다 높았다. 당연히 한국이 선진국이었다는 이야기다. 이것이 역전된 것이 1592년 임진왜란 때라고 역사학계에서 말한다. 7년간 전쟁으로 한반도가 완전히 파괴된 반면 약탈을 통해 일본의 경제 성장 발판이 마련됐다. 이후 조선 경제의 회복이 더뎠고 일본은 급성장했다. 물론 경제를 보는 양국 국민의 태도에도 차이가 있긴 했다. 일본과 한국의 격차가 가장 많이 벌어진 것이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다. 한반도 식민지화는 이런 이유를 바탕으로 한다.

일본정부관광국의 올해 1월 외래 관광객 동향 분석 자료. 한일 항공편의 증편과 복원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내용이 맨 위에 올라 있다. 일본정부관광국 홈페이지 갈무리일본정부관광국의 올해 1월 외래 관광객 동향 분석 자료. 한일 항공편의 증편과 복원으로 한국인 관광객이 급증했다는 내용이 맨 위에 올라 있다. 일본정부관광국 홈페이지 갈무리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격차가 좁혀지면서 최근 한국인의 소득수준(1인당)이 일본인을 앞질렀거나 아니면 적어도 대등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일 간에 소득 역전이 실현된다면 이는 400여 년만이다. 이제는 한국이 일본에 대해, 한국인인이 일본인에 대해 다르게 생각할 경제적 배경은 되지 않나 한다.


최수문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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