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뇨관(소변줄) 교체를 늦어도 이번 달에 해야 하는데...파업 때문에 부르지를 않으니 마냥 기다릴 뿐입니다."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거부가 일주일 차에 접어든 가운데 서울 내 대형병원에서는 줄줄이 수술 연기·조기 퇴원·입원 거부가 속출하며 '폭풍 전야'처럼 고요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26일 오전 서울경제신문이 방문한 서울 서초구의 서울성모병원은 전공의들의 집단 진료 거부가 시작된 이달 23일에 비해 썰렁한 모습이었다. 병원 1층에서 만난 안내 자원봉사자 A씨는 "확실히 평소보다 환자가 적다고 느껴진다. 원래 로비가 지금보다 훨씬 붐비는데 파업이 시작된 뒤로 사람이 쭉 줄어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각종 진료 예약, 수술이 줄어들어서 그런 것 같다"면서 "안내 담당자들을 총괄하는 선생님 말로는 일주일 사이 환자가 1000여 명 정도 줄었다더라"고 귀띔했다.
서울성모병원으로 이송되는 응급환자 수가 확 줄어들었다는 제보도 이어졌다. 한 사설 이송업체의 직원 B씨는 "환자가 엄청나게 줄었다. 파업 시작한 이후로 이송 건수가 70%는 줄다 보니 몸은 편하지만 마음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병원 응급실 근처에서 대기 중이던 B씨는 "오늘은 응급실에서 퇴원해 요양 병원에 들어가는 분을 이송하러 왔다"면서 "반대로 응급실에 입원해야 하는데 들어가지 못하는 분을 보면 마음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일방적으로 진료가 취소되거나 대기가 장기화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보호자들에게 꼭 사전 고지를 한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날 오후 1시 35분께 여성 노인이 탄 휠체어를 분주히 응급실로 옮기던 119구급대원 C씨는 "이 분은 성모병원에서 진료받은 적이 있다 보니 다행히 조금 더 빨리 들어갈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C씨는 "환자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중증 환자의 경우 진료 기록이 있으면 더 수월하다. 하지만 요새는 병상을 구하지 못해 멀리 가는 경우도 많다"면서 "어제 새벽에는 동대문구 환자를 은평구까지 데려가야 했다. 2차 병원조차도 평소보다 가기 힘들어 업무 강도가 격화했다"고 전했다.
평소 전공의가 도맡아온 간단한 의료행위들이 인력 공백으로 인해 무기한 연기된 상황도 포착됐다. 이날 남편과 함께 병원을 찾은 76세 D씨는 "원래 뇨관 교체를 3개월에 한 번씩 해야 해서 2월에 들어가야 하는데 지금 파업 때문에 병원에서 연락이 안 온다"고 토로했다. D씨는 "교체 시기를 놓쳐서 환자가 피해를 보면 어디에 하소연해야 하느냐"면서 "환자 목숨을 볼모로 잡는 의사들이 원망스럽다"고 털어놨다. D씨가 기다리고 있는 도뇨관 교체를 비롯해 비관 삽입, 관장 등의 간단한 의료행위는 현재 전공의를 대신해 PA간호사 등 다른 의료 인력이 도맡고 있는 형국이다.
한편 이날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보건의료노조) 기자회견에서 현장 실태를 고발한 한 대학병원 간호사 E씨는 "뇨관 교체를 간단한 시술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관을 삽입하면서 혈뇨가 나온다거나 도뇨관 자체의 폐쇄가 발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코로 식사를 대신하도록 하는 비관, 관장 과정에서의 약물 주입 역시 매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E씨는 "하지만 지금 현장에 있는 간호사들은 전문적으로 관련 교육, 훈련 없이 바로 투입되고 있다. 실제로 우리가 간호 대학에 다니며 실습을 할 때도, 면허를 딸 때도 이같은 침습적인 치료를 배운 적이 전혀 없다"면서 의료사고가 발생할까 봐 두려운 마음을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