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청론직설] “北, 核으로 체제유지 어렵고 연방제통일 불가능해지자 2국가 선언”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北, 탈냉전 초 체제 지키려 핵 개발했지만 되레 위험해져

영구분단 땐 中이 궁극적으로 北 차지하고 南 그냥 안둬

국제사회·北 주민에 ‘통일 지향 특수관계’ 계속 알릴 필요

美대통령 누가 되든 동맹·미군주둔·北비핵화 원칙 지켜야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이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독이 1970년대 ‘2국가’를 선언했지만 서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국가’를 지향했다”며 “영구 분단이 되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잘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이 28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동독이 1970년대 ‘2국가’를 선언했지만 서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국가’를 지향했다”며 “영구 분단이 되지 않도록 한반도 정세를 잘 관리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대한민국과는 통일이 성사될 수 없다”며 남북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했다. 70여 년 동안 견지해온 제1원칙인 ‘1국가’를 철회하고 ‘2국가’를 선언한 셈이다. 이와 함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등 대남 접촉 기구들도 폐지했다. 통일부 차관을 지낸 김천식 통일연구원 원장은 28일 “북한이 핵 개발로 체제 유지가 어려워지고 고려연방제 통일도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2국가를 선언한 것”이라며 “한반도가 영구 분단되면 북한의 티베트화가 현실화되고 중국이 궁극적으로 북한을 차지할 뿐 아니라 남한도 그냥 두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원장은 “5000년 민족사에서 가장 엄중한 시기”라며 “지식인들과 언론이 상황의 본질을 잘 간파하고 치밀하게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남북 관계가 잘 풀리면 좋을 텐데.

△남북 관계는 당장 잘 풀리지는 않겠지만 어느 시점에 갑자기 풀릴 것 같다. 아주 전환적인 상황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북한이 지난해 말 이후 한국을 ‘남조선’ 대신 ‘대한민국’이라 칭하는 등 ‘헤어질 결심’을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5000년 동안 이어져왔던 민족을 두 동강 내버리겠다는 발상이다. 우리가 ‘그래 좋다. 갈라서자’라고 해버리면 영구 분단으로 가게 된다. 영구 분단되면 우리는 약해지고 꿈과 좌표를 잃어버리게 된다. 중국이 동북공정으로 북한을 가져갈 것이고 북한을 취하면 남한도 그냥 두려 하지 않을 것이다. 상황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하고 정세를 잘 관리하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동독도 비슷한 정책을 취했다고 하는데.

△동독도 원래는 헌법에 ‘하나의 국가를 지향한다’고 했다. 그러다가 1974년에는 ‘동서독은 다른 민족이고 두 국가로 가야 하며 통일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서독은 처음부터 끝까지 동독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하나의 국가를 지향했다. 동독 주민들을 서독 국민으로 봤고 이탈한 주민들을 서독으로 데려가 정착시켰다. 우리도 그와 같은 정책을 펴고 있다.

-북한이 어떤 의도를 갖고 ‘2국가론’을 주장한다고 생각하는가.

△고려연방제로 통일하려고 해도 남한 주민들이 북한을 더 나은 체제로 인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 주민들이 남한을 동족으로 보면 북한의 체제 유지가 어렵다는 점도 고려했다. 북한이 남북 간 체제 경쟁에서 패배했다고 인정한 셈이다. 반동사상문화배격법 등을 만들어 남한 영화·드라마를 보면 사형까지 시킨다고 했는데도 막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극단적으로 남조선은 같은 민족도 아니고 파괴해야 할 적대 국가라고 규정했다. 오죽 급했으면 70~75년 동안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제1원칙으로 내세웠던 것을 부정했겠는가. 내부적으로 좀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은 어떠한가.

△북한의 국내총생산(GDP)은 우리의 60분의 1 수준에 못 미치고 1인당 GDP는 30분의 1도 안 된다. 2000년대 들어 약간 플러스 성장했지만 핵무기를 본격적으로 개발하면서 다시 가라앉았다. 북한 경제난의 원인은 많은 자원들이 핵 개발로 흘러들어간 데다 핵 개발로 인해 국제 제재가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등의 제재로 북한의 외화벌이도 대부분 차단됐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만큼은 아니지만 북한 경제는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다.

-북한의 인권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북한은 세계 최악의 인권침해 국가이다. 북한이 지도자를 위해 개인들이 희생돼야 한다는 집단주의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난까지 겹치니 민생이 안 좋아지고 권력은 더 폭압적인 체제를 강화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북한의 인권 상황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고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 이슈화하면서 북한을 압박하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이 외부 소식을 접하고 스스로 인권을 가진 주체라는 인식을 갖도록 돕는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4월 총선, 미국의 11월 대선을 앞두고 북한이 고강도 도발을 벌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북한은 전쟁 분위기를 고조시켜 우리 내부를 흔들어 국론 분열과 정부 불신을 조장하려고 한다. 미국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으로 위협해 핵 묵인, 제재 완화·해제를 노린다. 우리가 대비 태세를 확실히 갖추고 도발에 대해 단호하게 응징해 북한이 도발로 더 이상 얻을 게 없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한다.



-북한의 핵‧미사일 고도화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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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2021년 제8차 노동당 대회에서 여러 전략무기를 만드는 국방과학발전5개년계획을 발표했다. 크게 보면 핵탄두, 운반 수단, 군사 정찰위성 등 세 종류다. 핵탄두의 개수에 대해서는 여러 평가가 있지만 핵탄두 소형화는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남한을 공격할 수 있는 단거리 미사일은 이미 실전 배치를 하고 실제 훈련까지 하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장거리 미사일은 기술적 완성도를 높여가고 있다. 군사 정찰위성은 올해 서너 개 더 쏘아 올린다고 했으니 지켜봐야 할 것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오승현 기자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오승현 기자


-북러 밀착으로 북한 무기의 고도화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큰데.

△러시아는 풍부한 에너지와 식량을 북한에 상당히 지원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나라든지 고도의 군사기술은 우방 국가라고 해도 넘겨주지 않는다. 반미 전선 형성이라는 전략적인 의미를 고려해도 ICBM과 최종 병기라고 할 수 있는 핵추진잠수함 기술을 줄지는 의문이다. 김 위원장이 러시아에 갔을 때도 잠수함 기지는 보여주지 않았다. 군사위성 부분은 기술 지원이 어느 정도 가능할 것 같다.

-북중 관계는 어떤 수준인가.

△원래 북한·중국·러시아의 삼각관계가 그렇게 원활하지는 않았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불신을 갖고 있고 북한도 그들에 대한 불신이 있다. 중러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불신이 있다. 북중 관계에 한계가 있지만 핵·미사일과 관련해서는 중국이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유엔 안보리에서 추가 제재를 하기로 해놓고도 지키지 않는 등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빠른 전력 증강에 대해 어떻게 대비해야 하나.

△원래 북한은 소련이 무너지는 탈냉전 초기에 외부 위협 대응이 아니라 체제 유지 차원에서 핵 개발을 시작했다. 김 위원장이 2012년 12월에 정권을 승계한 후 핵무기를 빠른 속도로 완성하고 고도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핵으로 위협한다고 해도 국력이 북한보다 최소 60배 내지 몇백 배나 큰 우리나 일본·미국이 그리 무서워하겠는가. 한미일이 협력해 대응책을 마련하니 핵 위협이 통하지 않게 됐다. 대신 핵 개발로 북한 경제가 망가지고 민심이 이반하니 자신들이 그렇게 선전하던 ‘민족’과 ‘통일’을 버리겠다고 한다. 체제 유지를 위해 핵을 개발했는데 결국 더 위험한 상황으로 내몰린 것이다.

-우리의 대응책은 한미 동맹을 강화하고 자주국방력을 키워나가는 것인가.

△전쟁이라는 것은 항상 세력 균형이 무너지면서 나온다. 우선은 미국의 핵우산이 실효적으로 작동하도록 미국과 분명하게 약속하고 연습도 할 필요가 있다. 한미 동맹을 뒷받침하는 게 일본이니 한미일 군사 협력을 잘하면 핵전쟁 발발을 억제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핵 공격을 받았는데 미국이 핵우산을 펴지 않으면 세계 핵 질서는 완전히 망가진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과 대북 정책 등에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미국의 정치 상황에 너무 좌우되는 나라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누가 되든 한미 간에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 원칙이 있다. 한미 동맹의 탄탄한 유지와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견지 등이다. 우선 우리 스스로를 지킬 능력을 키워야 한다. 스스로 지킬 의지와 능력이 없으면 동맹도 우리를 도와줄 수 없게 된다. 한미 상호방위조약은 미국이 한국을 지켜주는 의무만 갖는 게 아니라 우리도 태평양 지역에서 미국의 군사적 수요에 부응해야 하는 의무를 갖고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우리도 책임과 의무를 다하고, 성장된 국력에 걸맞게 역할을 해야 한다.

-중장기적으로 우리의 통일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가는 게 바람직한가.

△헌법에 따라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의 노력을 계속해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 전쟁 억제력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핵 개발이 외려 체제 안전에 불리하다고 판단되면 북한 정권도 생각을 바꾸게 될 것이다. 북한이 두 국가 체제를 운운하고 있지만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남북 관계는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임을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북한에 급변 사태가 났을 때 우리가 그런 권리와 의지를 인정받을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북한 주민들을 우리 국민으로 받아들이고 인권 문제에 대해 계속 제기하고 북한에 어려운 사정이 발생하면 인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5000년 민족사를 계승하는 정통 국가, 책임 국가이고 유일한 합법 국가이다. 북한 주민들도 그런 생각을 갖도록 여러 수단을 통해 알려야 한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오승현 기자김천식 통일연구원장. 오승현 기자


◆He is···

1956년 전남 강진에서 태어나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30년 가까이 통일부에서 일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6·15 남북공동선언 작성에 참여하는 등 120여 차례 남북대화에 직접 관여한 남북 관계 전문가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통일부 차관을 지냈다. 북한대학원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세한대 석좌교수로 재직했다. 저서로 ‘통일국가론’이 있다.

오현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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