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왕국 재건’을 내건 일본의 반도체 전략이 인프라 구축에서 ‘인재양성’으로 중심축을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 세계 최대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 TSMC의 구마모토 1공장이 24일 문을 열고 가동에 들어갔다. 여기에다 일본 정부와 도요타·소니·키옥시아 등 8개 대기업이 첨단 반도체 국산화를 목표로 합작한 ‘라피더스’의 홋카이도 공장 건설도 순조롭게 진행 중인 가운데 산업 부흥을 이끌 전문인력 확보와 교육 시스템 구축에 팔을 걷어붙인 것이다.
◇고질적 반도체 인력난 해소가 관건=28일 아사히신문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전날 규슈 구마모토에서 열린 ‘규슈 반도체 인재육성 컨소시엄’ 회의에서 TSMC 1공장과 추가 건설이 결정된 2공장 두 곳에서 앞으로 외국인을 포함해 3400명의 인력이 근무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생산 목표 및 수율 등을 차질 없이 맞추기 위한 전문인력 확보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1공장에 필요한 인원은 총 1700명으로 올해부터 순차적으로 배치된다. TSMC로부터의 주재원 약 400명, 공장 운영사 JASM의 1기 125명 포함 채용자 300명, 출자기업인 소니그룹 직원 200명, 파견 포함 외부 기술자 700명 등으로 구성된다. JASM이 1공장 추가 인원과 2공장 직원 1700여 명 등 인력 확보를 위해 현지 채용을 늘리겠다는 계획이지만 일본 역시 반도체 전문인력이 부족한 상황이라 우려가 커지고 있다.
특히 TSMC 진출을 계기로 구마모토를 중심으로 규슈 지역에 반도체 관련 기업들이 몰리고 있는 데다 홋카이도에서도 라피더스 공장 신설에 따른 인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규슈경제산업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4월부터 지난해 말까지 TSMC 진출로 공표된 반도체 관련 설비투자는 규슈에서만 74건, 2조 5500억 엔에 달한다. 닛케이는 “2공장 확정으로 생산 규모가 크게 불어나면서 일본뿐 아니라 대만에서도 TSMC 공급망 지원 기업의 진출이 가속화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규슈의 산관학 100여 곳이 모여 만든 규슈반도체 인재육성 컨소시엄은 지난해 3월 ‘규슈에서 반도체 인재가 향후 10년간 매년 1000명 규모로 부족할 것’으로 추산했다. 여기에는 TSMC 2공장 진출은 포함되지 않아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는 게 업계 입장이다. 당장 구마모토 외 지역과 중소업체를 중심으로 채용난을 호소하는 곳들이 생기고 있다. 후쿠오카에서 반도체 관련 부품을 다루는 한 업체 관계자는 “TSMC나 국내 대기업 진출로 인력이 구마모토로 쏠리며 채용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기업 간부도 “계속 공장이 들어서도 인력을 빼앗기면 기업 경영이 약화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내 인재 육성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인력양성 나선 반도체 거점 대학들=반도체 전문 인력양성에는 기업과 대학들이 앞장서고 일본 정부와 지방정부가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JASM은 지난해 4월 1기로 입사한 125명을 6개월 기간 동안 대만에 연수를 보냈다. 이들은 반도체 생산 공장 현장을 참관하는 한편 TSMC가 2021년 개설한 ‘신입 훈련 센터’에서 반도체 제조장치 구조, 생산 공정, 라인 시스템, TSMC 기업 문화 등에 대한 전문교육을 받았다. 현장에 배치될 경우 기술 전문가들과 원활한 의사소통, 업무가 가능하도록 대만 관련 기업과의 교류를 지속할 계획이다. 후쿠오카시는 지난해 현 주도로 설립한 반도체 재교육 센터를 통해 현업 종사자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구마모토현 차원에서 수강료를 전액 부담한다.
자체 인재 및 교육풀 확대를 위한 교육기관의 움직임도 분주하다. 구마모토대는 학부급인 정보융합 과정과 반도체에 특화한 공과대 과정(반도체 장치 공학)을 4월에 신설하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반도체·디지털 연구교육기구를 30명 이상의 대규모 체제로 전환했다. 현재 이 학교에서 반도체 산업에 취업하는 졸업생은 매년 50여 명 수준으로 향후 이 수치를 2배로 늘리겠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특히 반도체 분야 전공 학생에게 연구 보조 업무를 맡겨 최대 4000엔의 시급을 지급한다. JASM은 인근 대학은 물론 전문고와 협력해 현장 인턴십부터 전문가 출강을 실시할 계획이다. 규슈 지역 내 전문고 졸업생들이 지역 밖으로 취업해 인력이 유출되는 문제가 반복됐던 만큼 장기적인 관점의 기업 연계 프로그램으로 교육은 물론 인재 선점 효과를 누린다는 방침이다. 라피더스 공장이 들어선 홋카이도에서도 홋카이도대가 반도체 연구로 정평이 난 도호쿠대와 교육·연구 제휴를 맺고 인재 육성 본부를 설치했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이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이공계 인재 매칭은 물론 비용 부담이 큰 중소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 등이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 밖에 여성, 외국인 등 젠더와 국적 면에서 연구자의 다양성 확보도 과제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