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차에 접어들어들면서 155㎜ 포탄을 비롯한 주요 무기의 유럽내 생산량이 답보 상태에 머물면서 한국에서라도 무기를 공급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 K방산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4일(현지 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EU 27개 회원국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중요성이 재확인된 155㎜ 포탄 연간 생산량은 지난 2년 사이 40%가량 증대되면서 주7일, 24시간 가동되는 핀란드 등지의 일부 공장은 전쟁 이전보다 생산량이 4배 이상으로 늘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길이가 1000㎞에 이르는 광활한 전선에서 진격해 오는 러시아군을 막아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하고 EU 회원국들은 우크라이나에 12개월에 걸쳐 155㎜ 포탄 100만발을 지원하겠다는 약속조차 지키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대원조국인 미국도 의회내 공화당 강경파들에 발목이 잡혀 610억 달러(약 81조 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추가원조 패키지를 수개월째 처리하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는 궁지에 몰린 상황이다. 우크라이나군은 최근 동부전선 격전지 아우디이우카에서 패퇴했고, 남부전선에서도 크림반도로 진격하기 위해 드니프로강 건너 크린키 지역에 구축한 거점을 지키는데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유럽 일각 “최선의 거래처면 한국제 사야”
수적 우위를 앞세워 밀고 들어오는 러시아군을 저지할 포탄이 부족했던 것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우크라이나는 매달 최소 20만발의 포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유럽이 생산하는 포탄 개수는 여전히 월 최대 5만발 안팎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일각에서는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제 3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방안이 제기되면서, 그 후보군으로 충분한 무기 생산능력을 갖춘 한국이 떠오르고 있다.
나토의 한 당국자는 “모두가 국내시장이 이익을 보길 원하고 있다”고 꼬집으면서 “편협한 지역주의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최선의 거래처가 한국이라면 우린 한국제를 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유럽 시장에서 K방산의 상은 녹록지 못하다. 한국산 무기가 유럽시장 내 점유율을 높여가면서 주력 시장을 뺏길 수 있다는 위기감에 독일과 프랑스, 영국 등 유럽 주요 방산업체들이 자국 내 무기 생산 능력과 성능을 높이는 동시에 수출을 막기 위한 암묵적 카르텔을 형성해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유럽이 안방을 뺏길까봐 K방산에 대해 엄청난 견제에 나선 것이다.
한국산 무기의 유럽 시장 확대에 가장 제동을 걸고 나서는 것은 독일이다. 지난 20년 넘게 독일은 전차강국답게 전차 최다 수출국 1위를 지키고 있다. 터키와 폴란드, 그리스 등 나토 회원국에 대한 수출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나토 회원국 간 무기를 구매하면 전쟁 발생 시 부품과 정비 지원을 빠르게 받을 수 있고 연합작전과 군수 지원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나토 회원국 대부분 독일산 무기를 사용했다. 하지만 K2전차가 주요 수출국이었던 폴란드 시장을 휩쓸자 독일이 견제를 위해 팔을 걷어붙이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독일 라인메탈(Rheinmetall AG)은 최근 우크라이나에 탄약 생산공장을 신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라인메탈은 신설될 공장에서 155㎜ 포탄을 생산할 계획이다.
독일, 생산 능력 확대·단가 인하로 견제
이는 자사의 PzH2000을 포함해 서방권의 자주포가 널리 채용하는 구경으로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도 같은 구경을 써 경쟁 모델이다. 유럽 내 탄약 수요가 커진 상황이지만, 장기적으로 독일의 탄약 생산 능력이 확대되면 한국 방산업체의 수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현대로템 K2전차 수주가 확실시됐던 노르웨이 사업의 경우 독일 레오파르트2A7 수주로 돌아섰다. 수주를 위해 독일은 당초 러시아에서 수입하던 천연가스 거래처를 노르웨이로 옮기는 조건을 제시했다. K2전차 가격은 독일산보다 2.5배 저렴하고 표적획득·처리 속도는 더 빠르지만 독일산에 밀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라인메탈은 올해부터 우크라이나에서 푹스(Fuchs) 장갑차와 링스(Lynx) 보병전투차량 등도 생산하겠다고 밝혔다. 지난해엔 헝가리에 링스 생산 공장도 준공했다. 링스는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호주에 수출한 레드백(redback) 장갑차와 경쟁했던 기종이다. 생산 능력 확대를 통해 단가를 내리는 방식으로 레드백의 유럽 진출에 대비하려는 것이다.
방산 업계 관계자는 “한국이 폴란드에 전차와 자주포 등을 대량 수출한 것은 유럽 국가의 생산 능력이 부족했던 영향 때문”이라며 “한국에 뺏긴 안방을 독일이 다시 찾아오기 위한 견제를 시작했다”고 했다.
유럽 일각에선 제기된 우크라이나에 충분한 무기를 공급하기 위해 제3국에서 무기를 수입하는 방안에 대해 프랑스 등이 주도적으로 반대로 사실상 무산된 것으로 전해졌다. 프랑스도 유럽 시장에서 K방산의 견제자로 부각되고 있다.
당장 최근 전 세계에서 여러 건을 수주한 프랑스의 ‘라팔’(Rafale)사는 전투기 성능 개량에 힘쓰고 있다. 라팔은 향후 같은 4.5세대 전투기로 분류되는 한국의 명품 전투기 ‘KF-21’과 세계 곳곳에서 경쟁할 기종이다.
라팔은 2000년 이후 프랑스군의 주력 전투기로 사용되면서, 수출 주력에 나섰지만 성능과 가격 문제로 미국 전투기에 밀려 수주전에서 잇따라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공격적 수주전으로 돌아선 후에 2016년부터 인도를 시작으로 이집트, 카타르, 그리스, 크로아티아, 아랍에미리트, 인도네시아 등에서 수출 계약을 따내며 명성을 높이고 있다. 최근에는 신형 적외선 탐지·추적 장치 등의 개량해 탑재한 개량형 ‘라팔F4’ 버전을 만들어 지난해 3월에 프랑스 공군에 납품하기도 했다.
프랑스는 정부 주도로 점유율 확대 나서
이 같은 행보로 국제 방산시장에서 프랑스는 영국·독일과 반대로 시장 점유율이 증가 추세다. 특히 2021년부터 러시아를 제치고 세계 2위로 급부상 중이다. 러시아의 무기 수출이 경제 제재 등으로 주춤하는 사이에 프랑스가 그 공백을 파고들어서 성과를 거두는 셈이다.
프랑스는 정부가 주도하고 있다. 2023년 9월에 프랑스 국방장관이 방산 업체 관계자 20여명을 대동하고 우크라이나를 방문했다. 기동장비 생산업체 아르쿠스(Arquus)는 우크라이나와 장갑차 생산 공장 설립을 위한 의향서 체결까지 했다. 자주포를 생산하는 넥스터(Nexter)도 현지 합작공장 건설 방안을 모색 중이다.
통상적으로 서방이 무기를 지원하는 수준이 아닌, 자국 방위사업 챙기기에 열을 올렸다. 무엇보다 프랑스는 한국의 폴란드 진출을 참고하며 현지생산과 기술이전 지원을 약속하는 방식으로 무기수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이다.
영국도 위상이 하락한 방위산업에 대한 정책 변화를 시도하고 나섰다. 세계 방산시장에서 영국의 점유율은 2013∼2017년 4.7%(6위)에서 2018∼2022년 3.2%(7위)로 순위가 1단계 하락했다. 점유율까지 32%나 감소하면서 공세적 자세로 돌아선 것이다.
당장 영국은 노후 AS-90 자주포 32문을 우크라이나에 제공하면서 2032년까지 최신 자주포 116문(약 1조 2000억 원)을 확보하고자 했다. 한국은 ‘K-9A2’로 경쟁에 참여했다. 지난 3월 영국은 계획을 변경해 자주포 전력의 공백을 메운다는 명분으로 스웨덴산 ‘아처’(Archer) 14문을 계약했다. 이는 영국의 BAE Systems이 아처의 차체를 생산하기 때문에 자국 방위산업을 우선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이 나온다.
또 BAE Systems는 우크라이나에 사무소를 열었다. 자국산 105㎜ 견인포(L-119)의 현지 생산에도 합의했다. 스웨덴 소재 자회사에서 생산하는 CV-90 보병전투차도 생산·정비에 대한 의향서를 체결했다. 세계 7위인 항공·우주·전투함정·지휘통제통신 등 첨단 분야에 집중하던 글로벌 방산기업이 재래식 포병·장갑차 등에 관심을 갖고 현지 생산에 뛰어들었다. K방산으로는 영국까지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에 봉착한 셈이다.
관행 같은 NATO 회원국 간 거래가 ‘발목’
무엇보다 독일을 중심으로 프랑스와 영국이 가세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회원국 간의 암묵적 공동 대응이다. 일종의 카르텔로 K방산으로서는 가장 조심해야 할 대목이다. 전문가들은 나토와 이를 둘러싼 국제정치·외교적 역학관계, 지정학적 특성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무기체계 수준이나 품질 등 제품력 외에 요소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얘기다. 나토 회원국 30개국 가운데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28개국이 모두 유럽에 위치하고, 과거 수십 년간 회원국 위주로 무기를 거래하는 등 뿌리 깊은 관행을 지속해 왔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현지화 전략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유럽 업체와 손잡고 현지에서 생산을 진행해 후속 군수 지원과 정비를 보다 신속하게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우호적 세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