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전투기 조종사를 키우기 탑건을 배경으로 하는 미국 영화 ‘탑건:매브릭’. 주인공 톰 크루즈를 비롯한 등장인물들은 초고속 최신의 전투기를 기동하며 훈련과 임무를 수행한다. 과연 일반인도 전투기를 조종할 수 있을까.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이 전투기에 탑승하게 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속도 마하 2가 넘는 전투기가 급상승·급선회하는 동안 조종사에게는 사실 극심한 고통이 따른다. 지구중력의 6배가 넘는 하중이 몸에 전달되고 피가 하체로 쏠려 머리에 혈액이 부족해져 일시적으로 시력이 상실되거나 정신을 잃는다. 자그마한 실수도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에 조종사들은 늘 극한의 고통을 견뎌내며 고군분투가 있다.
지난 28일 조종사가 되기 위한 예비 관문으로 국내에서 유일하게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할 수 있는 충북 청주시에 자리잡은 공군 항공우주의료원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를 찾았다.
조종사들 고향 ‘항공우주의학훈련센터’
이곳은 조종사들의 ‘고향’이다. 공군사관학교 내에 위치해 조종사를 꿈꾸고 입교한 생도들을 교육하고, 육·해·공군 항공 근무자들의 훈련을 담당한다. 베테랑 전투기 조종사들도 3년마다 한 차례 이곳을 찾아 비행환경 적응훈련을 받아야 한다.
훈련센터 소개와 함께 대기권 물리, 고공생리이론, 산소장구이론, 가속도 훈련 등에 대한 이론 교육을 받은 후 곧바로 조종사 훈련복과 군화 등을 챙겨받고 본격적인 실전 훈련에 들어갔다. 예비 전투기 조종사들과 똑같은 일반적으로 노출되는 비행환경에 대한 실습을 진행했다. △가속도내성강화훈련(일명, G-TEST)를 시작으로 △공간감각상실훈련 △비상탈출훈련 △고공저압환경훈련 등이다.
먼저 이날 훈련의 하일라이트이자 가장 고통스러운 가속도내성강화훈련(G-TEST)을 실시했다. 일명 ‘곤돌라’ 안의 중력은 일반 롤러코스터의 3~4배 이상이다. 이론 교육할 때 가속도 극복 방법인 ‘L1 호흡법’을 배웠다. ‘윽! 크흐’ 소리를 내는 특수 호흡법이다. ‘윽’ 소리와 함께 폐의 압력을 높여 심장이 운동할 수 있는 가슴 공간을 확보하고 재빨리 ‘크흐(크에 숨을 내뱉고 흐에 들이마신다)’ 소리로 최소한의 산소를 확보해야 한다. 이 박자를 놓치면 수초 만에 혼절한다.
그러나 조종석에 앉아 F-15K 전투기와 동일한 조종간(조이스틱)을 잡는 순간, 앞선 훈련생들이 의식을 잃고 픽픽 고꾸라지는 모습을 화면으로 지켜봐선지 자신감이 떨어지면서 초긴장 상태에 빠졌다. 오늘의 미션은 중력의 6배에 해당하는 힘을 20초간 견디기다.
화면 오른편에는 1.4G로 표시된 계기가 보였다. 교관이 나가고 잠시 후 ‘3, 2, 1’ 소리와 함께 ‘쭉 당기세요’하는 교관의 지시가 떨어졌다. 조종간의 트리거(방아쇠)를 꾹 누른 채 조종간을 몸 쪽으로 끌어당겼다. 빠른 속도로 중력가속도가 올랐다. 거대한 원심분리기에 탄 기분이었다.
얼굴이 곧장 찌그러지는 게 피부로 느껴졌다. 눈·코·입 배열이 뒤바뀌는 느낌과 함께 시야가 어두워지더니(그레이 아웃) 눈앞이 깜깜해지졌다. 내 망가지는 모습은 교관과 훈련생들은 실시간으로 지켜보고 있겠지만, 나는 머릿속엔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다리에 엄청난 힘을 주고 눈을 부릅떴지만 머리를 세게 한 대 맞은 듯 눈앞이 캄캄해지고, 나도 모르게 의식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L1 호흡법은 잊은 지 오래다. 숨 쉬는 법조차 아예 까먹었다. 3G, 4G, 5G, 6G… 가속도가 계속 붙자 자연스럽게 머리가 아래로 떨어졌다. 그때 “정신 놓으면 안 돼요! 호흡하세요!” 교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눈앞이 캄캄하고 의식 점점 희미해”
교관의 안내를 계시처럼 따르며 잊었던 L1 호흡법을 유지했다. 잠시 후 “합격입니다.” 처음에는 거짓말인 줄 알았다. 곤돌라가 완전히 멈추기 5초 전까지도 교관은 끝난 것이 아니라며 ‘호흡하세요’라고 지시했다. 곤도라가 초당 1G속도로 감속할 때 급격하게 몸이 땅으로 기우는 같은 느낌이 왔다.
결국 의식이 반쯤 나간 상태에서 어영부영 하다가 어렵사리 20초를 버텨냈다. 곤돌라에서 나와서도 헛구역질이 나며 호흡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다리가 후들거렸고, 한발 한발 걸을 때마다 땅이 꺼지는 느낌이었다.
훈련장을 나서자 교관이 “훈련을 받기 위해 오는 공군사관학교 생도들도 50~70% 정도만 합격한다”며 “6G서 5초만에 기절해버린 분들도 있는데 오늘 훈련에 참가한 기자들 절반 가량만 성공했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공군 조종사들은 보통 지구 중력의 9배에 해당하는 9G에서 15초 이상을 버텨야 전투기에 탈 수 있다고 한다. 조종사들을 향한 존경심이 절로 피어올랐다.
이번엔 공간감각상실훈련을 위해 비행착각 훈련 장비에 탑승했다. 이 훈련은 시각에 의존하는 신체적 한계를 체험하고 계기를 통한 비행의 안전성에 대한 신뢰성을 경험하고자 하는 훈련이다. 베테랑 조종사들도 비행착각으로 인해 추락사고가 나기도 하는 만큼 중요한 훈련이다.
뮬레이션 화면과 실제와 같은 환경의 조종석에 앉아 3차원 환경에서 전투기 기동할 때와 똑같은 환경을 느낄 수 있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45도 각도로 선회하면서 몸을 적응하다가 본격적인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야간(운중)비행 상황에서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10도 각도로 이륙을 시도했다. 그러자 마치 몸은 그 이상으로 솟구치는 느낌을 받았다. 일종의 비행착각이다.
예컨대, 10도 정도 상승각으로 지면에서 떠오른다면 안에 타고 있는 조종사는 자신에게 가해지는 가속도 때문에 그보다 더 큰 각도로 떠오르고 있다고 착각한다. 교관이 “지금 각도가 몇 도 정도라고 느끼시나요?”라고 묻기에 “20~30도 정도 같다”고 답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10도라는 대답이 돌아오자 매우 당황스러웠다.
비행착각 위험, “계기판 믿고 비행해야”
뱅글뱅글 도는 장비 탓에 어지러웠지만 이내 수평을 찾은 것처럼 느껴졌다. “자, 이제 왼쪽을 바라보세요”라는 말과 함께 고개를 돌렸다. 머리가 ‘팽’하고 돌았다. 온몸이 오른쪽 상공으로 치솟는 느낌을 받은 탓이다. 사실 장비는 왼쪽으로 기운 채 선회하고 있었다. 이는 모두 평형감각의 약 70%를 시각에 유지하는 신체의 한계와 전정기관에 의한 현상이다.
시물레이션이 끝나가자 교관이 설명했다. 이 같은 공간감각 상실을 극복하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계기비행(IFR)이라고 한다. 감각은 거짓말을 하기도 하지만 기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기에, 조종사들은 자신의 감각도 중요하지만 반드시 계기판을 믿고 비행하는 법을 습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음은 전투기 조종이 불가능한 경우를 대비한 비상탈출훈련을 했다. 전투기 추락 등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종사가 최후의 활로를 열 수 있도록 숙달하는 과정이다. 조종석이 사출될 때 조종사에게 가해지는 순간적인 충격은 20G에 달하는데, 이를 체험하고 올바른 탈출 자세와 방법을 훈련한다.
우선 헬멧을 쓰고 2층 건물 높이(5.2m) 레일에 놓인 사출 훈련장비에 올라탔다. 좌석에 앉아 스크린을 바라보며 자유 비행을 하다 화면에 ‘EJECT’(탈출) 문자가 떴다.
그런데 자세를 잡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간신히 좌석에 몸을 딱 붙이고 자세를 잡은 뒤 탈출손잡이를 당기자 레일을 타고 공중으로 치솟았다. 탈출 손잡이를 당긴 순간 몸이 솟구쳐 올랐다.
탈출 순간, 척추 세게 얻어맞은 충격
놀이동산에 있는 ‘자이로드롭’과 비슷하지만 정확히는 반대 방향의 압력이 가해져 놀이기구보다는 더 거칠었다. 어느 정도 각오하고 있었는데도 척추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이 훈련은 아주 강한 힘으로 몸이 위로 솟구치기 때문에 자세를 잘못 잡았다간 목이 부러질 수 있다. 탈출에 성공하더라도 너무 고도가 낮으면 낙하산이 펴질 시간이 없거나, 펴지더라도 낙하 속도가 충분히 느려지지 못해 지면에 충돌해 사망하는 경우도 있어 전투기 조종사에게 필수 훈련이다.
뉴스를 통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사명감 때문에 마지막까지 조종간을 놓지 않고 민간인 지역을 회피하다가 비상탈출 적기를 놓쳐 순직하는 공군 조종사들의 소식이 머릿속을 스쳤다. 조국에 대한 애국심이 얼마나 대단하지 자랑스러우면서도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다.
마지막 코스인 고공저압환경훈련이다. 전투기 조종사들이 임무를 수행하는 지상 6000m 이상 고도에서 느끼는 신체 변화를 체험하는 곳이다. 훈련은 저압·저산소 상태에 노출돼 멍해지는 환경조성부터 시작한다. 밀폐된 고공 저압 훈련장에 2만5000피트(약 7620m) 고도와 비슷한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몇몇 훈련생은 안구와 귀에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며 훈련을 포기하겠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목표지점인 2만5000ft에 다다르자 산소마스크를 벗었다. 마스크를 벗자마자 체내 산소농도 측정 수치가 99%에서 77%까지 떨어졌다. 곧바로 어지러운 느낌과 함께 두통을 느껴졌다.
구구단 ‘9·8·7·6단’을 차례로 푸는 임무를 부여 받았다. 예상과 달리 시작부터 당황했다. ‘9x4’가 답이 뭔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8x4’ 답을 생각할 때 쯤에는 생각이라는 것이 되지 않다. 답안지를 펜으로 툭툭 두드리며 숫자를 적었다 지웠다 반복하기 일 수였다. “이건 뭐지. 왜 곱셈이 안되지. 이게 아닌데” 혼자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겨우 겨우 답을 종이에 채우지만 산소 포화도가 60%대로 떨어지면서, 교관이 재빨리 다가와 산소마스크를 채워줬다. 급히 공기를 들이마시고 심호흡을 하자 정신이 맑아졌다. 정신이 들고 답안지를 살펴 보니 구구단을 엉망으로 풀었다. 헛웃음이 나왔다.
“산소마스크 자국은 조종사의 자부심”
훈련을 마치고 산소마스크를 떼자 얼굴에 깊은 자국이 남았다. 벌겋게 난 자국이 민망해 벅벅 문지르자 교관이 다가와 “산소마스크 자국은 조종사의 자부심”이라고 귀띔했다. 그 한마디에 생각은 뒤바뀌었다. 땀에 젖은 조종복과 선명한 산소마스크 자국이 자랑스럽게만 느껴졌다. 혹독한 훈련 뒤 남은 명예로운 ‘마스크 자국’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졌다.
전투기 조종사의 예비관문인 쉽지 않은 도전이었다. 약 7시간의 짧지만 믿기 힘들 만큼의 다이내믹한 훈련을 마친 끝에 받아든 수료증. 유효기간이 1년이라고 적혀 있다. 현역 조종사들도 임무 수행을 위해 3년에 한 차례씩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게다가 이날 기자가 받은 강도 높은 네 가지의 훈련 외에도 야간시각훈련까지 마쳐야 비로소 영공을 지키는 임무를 할 수 있는 예비조종사가 될 수 있다고 한다.
하동열 항공우주의료원 훈련센터기동생리훈련과장은 “비행환경 적응훈련은 조종사들이 극한의 비행환경에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 이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사전에 지상에서 실시하는 훈련”이라며 “공군의 모든 조종사들은 3년 주기로 이곳 항의연에서 고된 훈련을 받으며 최고의 전투력을 갖추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