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해리스 부통령은 준비된 구원투수

유진 로빈슨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백악관 입성후 활발한 현장학습

행정부내 손꼽는 외교통 거듭나

낙태등 선거 쟁점에 해리스 활용

'바이든의 대타' 전략 유용할 것





일반적으로 부통령은 외교정책에 깊숙이 관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필자가 보기에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은 외교 문제에 남다른 관심과 식견을 갖고 있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4년 전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그를 러닝메이트로 선택했을 때까지만 해도 그의 이력서에는 외교 분야의 경험이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샌프란시스코 지방 검사와 캘리포니아주 검찰총장을 거쳐 연방 상원의원으로 활동했지만 외교정책 분야에서는 내세울 만한 경력이 없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을 따라 백악관에 들어간 후 그는 활발한 현장학습을 통해 현 행정부의 손꼽히는 외교통으로 거듭났다. 그의 이 같은 변신과 성장은 2024년 대선에서 그가 차지하는 비중을 높여줬다.



해리스 부통령은 지난주 미국 정부를 대표해 독일 뮌헨안보회의에 참석했다. 국제 안보 정책을 논의하는 연례회의에 그가 참석한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전언에 따르면 해리스 부통령의 2022년 뮌헨안보회의 데뷔는 그리 신통치 않았다. 그는 주요 의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다소 머뭇거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당시 러시아는 수백 대의 탱크와 대규모 병력을 우크라이나 접경 지역에 집결시키는 중이었다. 해리스 부통령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4일 전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첫 회담을 마쳤다. 후일 그는 필자에게 “솔직히 그때는 젤렌스키 대통령을 다시 본다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올해 뮌헨안보회의에서 그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였다. 해리스 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키이우는 자유로운 도시로 우뚝 서 있다”고 강조했다. 본회의 연설에서 그는 미국의 적극적인 국제 문제 개입을 강력히 옹호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국제 무대에서 그는 더 이상 어리숙한 풋내기가 아니다. 뮌헨안보회의에서 해리스 부통령은 이츠하크 헤르초그 이스라엘 대통령과의 비공식 면담에서 하마스에 의해 가자에 억류된 인질들의 전원 석방을 촉구하는 한편 3만여 명의 팔레스타인 사망자를 낸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중대한 인도주의적 위기’로 규정하고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의 공격을 장기간 중지하라”고 강력히 요구했다.



임기 초반까지만 해도 까다로운 국제 문제에 대한 그의 언급은 요즘과 같은 묵중한 권위를 지니지 못했다. 그러나 부통령 자격으로 16차례 해외 방문에 나서면서 외교 현안을 파악하고 각국 지도자들을 평가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워싱턴을 방문한 세계의 지도자들이 해리스 부통령과 별도의 회담을 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최근의 사례만 봐도 요르단 국왕인 압둘라 2세는 바이든 대통령과 면담한 지 하루 뒤인 2월 13일 해리스 부통령과 회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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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년간 상원의원으로 활동한 데 이어 버락 오바마 대통령 밑에서 부통령을 지낸 바이든 대통령의 이력으로 볼 때 외교정책에서 현 행정부의 최종 결정권자가 누구인지는 분명하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언제든 필요한 경우 해리스 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의 대타로 나설 만한 충분한 외교적 역량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 또한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니키 헤일리 공화당 대통령 예비후보는 지난 수개월 동안 해리스의 외교력을 물고 늘어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시절 유엔대사를 지낸 헤일리 후보는 최근 유세에서 “해리스가 대통령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만으로도 등골이 서늘해진다”고 말했다. 11월 대선에서 설령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다 해도 고령 탓에 결국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직을 승계할 것이라는 가정에 바탕을 둔 선제공격인 셈이다. 또 공화당 유권자의 83%가 해리스 부통령을 부정적으로 바라본다는 유고브 여론조사 결과를 염두에 둔 ‘계산된 도발’이다.

그러나 같은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유권자의 86%는 그에게 호감을 표시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낙태와 투표권 등 주요 쟁점안을 중심으로 민주당 유권자들의 결속을 이뤄내기 위해 그를 적극 활용하는 민주당의 선거 전략은 대단히 효과적이다. 바이든 대통령 역시 자신이 더 이상 대통령직을 수행할 수 없는 경우 해리스 부통령이 언제라도 군 최고통수권자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도록 그에게 현장 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우리는 지금 ‘격동의 시기’에 살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는 전화에 휩싸였고, 중국은 대만을, 러시아는 유럽을 넘보는데 공화당은 침대 밑으로 몸을 숨긴 채 모른 척한다. 우리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드는 일은 수두룩하지만 해리스 부통령이 대통령이 된다는 생각은 거기에 포함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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