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저는 40여 년 동안 몸담고 일궈왔던 민주당을 떠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설훈 무소속 의원)
더불어민주당에서 사람이 떠나고 있다. 그것도 당에서 20년 이상 몸담았던 이들이 고별인사를 남기고 있다. 공천 과정에 반발해 정치인이 탈당하는 경우는 과거에도 있었지만 장기 근속한 이들이 등을 돌리는 모습은 당의 정체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일 정치권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민주당을 탈당한 설훈(5선·경기 부천을) 의원은 1985년 신민당에 입당했다. 올해로 민주당 계열 정당에서만 39년차다.
민주당 내에서 민평련계·동교동계로 분류돼온 설 의원은 지난 대선 경선에선 이낙연 후보를 도왔다. 이후 ‘비명(비이재명)계’로 낙인 찍혀온 설 의원은 최근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에서 하위 10%에 속했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총선 공천 과정에서 ‘하위 20%’ 통보 사실을 가장 처음으로 밝힌 김영주(4선·서울 영등포갑) 의원은 1999년 김대중 대통령에게 노동계 인사로 발탁돼 민주당(당시 새천년민주당)에 발을 내디뎠다. 올해로 민주당 생활 25년째다.
문재인 정부 초대 고용노동부 장관을 지내며 ‘친문(친문재인)’으로 분류되기도 하지만 계파색이 옅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21대 국회에선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이들에 앞서 민주당을 탈당한 이른바 ‘원칙과 상식’ 3인방(이원욱·김종민·조응천)의 민주당 재직 기간도 도합 50년이 넘는다.
개혁신당에 몸담은 이원욱(3선·경기 화성을) 의원은 민주당 계열 정당의 공채 1기(1998년) 당직자로도 유명하다. 민주당에는 이보다 1년 앞선 1997년(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했다. 하지만 이번 총선 과정에서 27년간의 민주당 생활을 마무리했다.
새로운미래에 합류한 김종민(재선·충남 논산·계룡·금산) 의원 앞에는 ‘노무현의 대변인’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는다. 참여정부 청와대 대변인 근무 이력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가 마무리되고 2008년 통합민주당으로 입당한 뒤 민주당에서만 16년 몸담았다.
조응천(재선·경기 남양주갑) 개혁신당 의원은 2016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전 대표로 정계에 입문했다. 국회의원 재직 기간 8년 내내 늘 당내 주류에 쓴 소리를 하며 민주당에선 대표적인 소장파 의원으로 자리 잡았다.
본인의 ‘컷오프(공천 배제)’ 결정에 반발해 탈당한 이수진(초선·서울 동작을) 의원은 2020년 이해찬 대표 체제에서 영입된 인물이다. 이번 총선 불출마를 결정한 소병철·오영환·이탄희·홍성국 의원과 함께 민주당 영입인재 동기다.
‘현역 하위 10%’ 통보를 받고 탈당한 박영순(초선·대전 대덕) 새로운미래 의원도 민주당에 1995년부터 몸담았다. 25년 간 낙선만 거듭한 끝에 2020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진보당과의 후보 단일화에 반발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한 이상헌(재선·울산 북구) 의원 또한 2000년부터 민주당에겐 험지인 울산에서 꾸준히 도전장을 내밀었다. 지역 정가에선 보수정당으로의 러브콜도 있었지만 민주당을 지켜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올해 탈당한 현역 의원의 민주당 재직 기간을 더하면 총 172년이다. 여기에 이낙연 전 국무총리(2000년 입당)와 지난해 국민의힘으로 이적한 이상민 의원(2003년 입당)까지 더하면 200년이 훌쩍 넘는다. 최근에는 27년차 당직자가 ‘조국혁신당’에 입당하기도 했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일부 의원들은 명확한 설명도 없이 ‘당의 결정’을 이유로 출마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면서 “특히 험지에서 민주당을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에겐 지난 세월과 노력을 부정당한 느낌일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