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3일 코스닥시장에 상장한 전자현미경 제조사 코셈(360350)의 수요예측에는 기관투자가 2022곳이 몰렸다. 이 가운데 일정 기간 공모주를 팔지 않겠다고 약속하는 ‘의무보유 확약’에 참여한 기관은 180곳에 불과했다. 기관의 8.9%만 주식을 장기 보유하겠다고 결정한 것이다. 기관이 상장 기업에 의무보유 확약을 걸지 않은 사례는 비단 코셈뿐이 아니다.
3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해 들어 신규상장한 코스닥 기업 9곳 중 6곳의 수요예측에서 기관의 의무보유 확약 비율이 10%를 밑돌았다. 코셈과 같은 날 상장한 이에이트(418620)에 의무보유 확약을 건 기관의 비중은 1.5%에 불과했고 케이웨더(068100)(3.4%), 스튜디오삼익(415380)(4.3%), 포스뱅크(105760)(4.8%), HB인베스트먼트(440290)(5.8%) 역시 한 자릿수에 머물렀다. 그나마 우진엔텍(457550)(15.5%), 현대힘스(460930)(16.2%), 이닉스(452400)(28%) 3곳만 10%를 넘어섰다. 지난해 코스닥 시장의 평균 의무보유 확약 비율이 26.4%인 점을 고려하면 올 들어 신규상장한 코스닥 기업 9곳 중 8곳이 지난해 평균에 미달한 셈이다. 코스피시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올해 첫 코스피 공모주로 주목 받은 에이피알(278470) 수요예측에선 25.7%의 기관만 장기 보유를 약속했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공모주 시장이 과열되자 기관들도 상장 직후 주식을 팔아 치우는 단기 매매 전략을 취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공모주 시장의 활황은 지난해부터 신규상장 종목의 공모가 대비 가격 제한 폭을 기존 260%에서 400%까지 확대한 제도가 시행되며 두드러지고 있다. 이전까지는 첫날 최고 수익이 ‘따상(시초가가 공모가 대비 2배 형성된 후 상한가)’이었지만 이제는 ‘따따상(공모가 대비 4배)’이 가능해지며 기관도 공모주 단타 거래에 매력을 느낀다는 설명이다. 금융투자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12월 에코프로머티가 ‘따따블’에 성공한 뒤 공모주 시장이 과열됐다”며 “기관들도 장기 투자 시 수익을 내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라고 말했다.
기관이 공모주에 대한 묻지마식 투자로 단기 차익 실현에만 집중하는 것은 수요예측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예측은 신규 상장사의 사업성과 경쟁력을 판단하는 절차로 기업의 적정한 주가가 결정되는 작업인데 차익만 노린 군소 기관들이 난립하며 시장의 정상 작동을 막기 때문이다. 투자자들이 급증하면서 개인의 경우 1주도 배정 받지 못하는 ‘빈손 청약’도 속출하고 있다.
주가 변동성을 야기하는 점도 문제다. 기관이 공모주를 상장 직후 대량 매도해 차익을 실현하다 보면 주가가 급락할 수밖에 없다. 코셈의 시초가는 4만 2000원이었지만 29일 종가는 3만 200원으로 28% 떨어졌다. HB인베스트먼트(-67%)·스튜디오삼익(-63%)·케이웨더(-49%) 역시 시초가 대비 반토막 났다. 실제 기관은 이들 종목의 매물을 대거 내놓으며 주가를 끌어내렸다. 기관은 코셈 상장 후 총 126억 원어치를 팔았고 HB인베스트먼트(351억 원)·스튜디오삼익(215억 원)·케이웨더(137억 원)도 순매도했다. 공모가 띄우기에 개미들만 손해를 보는 셈이다.
지난해 7월 금융당국이 의무보유를 확약한 기관에 물량을 우선 배정하도록 제도를 개선했지만 큰 효과는 없는 실정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기관 입장에선 의무보유 확약을 걸어서 물량을 더 받는 대신 그보다 적은 물량이라도 상장 당일 고점에서 매도하는 것이 훨씬 이익”이라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