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이탈에 따른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8일부터 간호사들도 응급 환자에게 심폐소생술과 약물 투여를 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간호사의 업무 범위를 더 명확히 하면서 그동안 법적 사각지대에 있던 진료보조(PA) 간호사 제도화에 속도가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7일 공개한 ‘간호사 업무 관련 시범사업 보완 지침’에서 간호사를 숙련도와 자격에 따라 ‘전문간호사·전담간호사·일반간호사’로 구분해 업무 범위를 설정하고 의료기관의 교육·훈련 의무를 명시했다. 전문간호사는 추가 자격시험을 따로 통과한 간호사, 전담간호사(가칭)는 흔히 말하는 ‘PA 간호사’를 말한다.
정부는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 이후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간호사들이 의사 업무 일부를 합법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시범사업을 지난달 27일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번 지침은 현장에서의 업무 범위를 명확하게 해달라는 요구에 따라 마련됐다. 특히 2020년 전공의 총파업 당시 의료 공백을 메우기 위해 PA 간호사가 투입됐지만 이후 의사들에게 ‘무면허 의료 행위’로 고발당하면서 법적 보호를 재확인해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보완 지침에 따르면 앞으로 모든 간호사들은 응급 상황에서 심폐소생술이나 응급 약물 투여를 할 수 있다. 전문간호사는 중환자실에서 기관 삽관을 할 수 있고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는 수술실에서 수술 부위 봉합과 봉합 매듭, 수술 보조를 모두 할 수 있다. 진료 기록이나 검사·판독 의뢰서, 진단서, 전원의뢰서, 수술동의서 등 각종 기록물의 초안을 작성할 권한도 전문간호사와 전담간호사에게 부여된다.
반면 간호사에게 X레이 촬영, 대리 수술, 전신마취, 전문의약품 처방 등의 권한은 주어지지 않는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프로포폴에 의한 수면 마취, 사망진단도 금지돼 있다. 복지부는 ‘간호사업무범위검토위원회’를 구성해 의료 현장 질의에 대응하기로 했다.
이번 지침은 종합병원과 전공의들이 속한 수련병원의 간호사들에게 적용된다. 수련병원이 아닌 종합병원의 경우 간호사 업무 범위를 설정한 뒤 복지부에 제출해 승인받아야 한다. 각 의료기관은 간호사업무범위조정위를 구성하고 전담간호사 등이 참여한 가운데 간호부서장과 협의해 업무 범위를 설정해야 한다. 각 병원은 이 위원회에서 정한 업무 외에 다른 업무를 지시해서는 안 된다. 의료기관장이 간호사 업무를 추가했을 때는 자체 보상해야 한다.
관리·감독 미비에 따른 사고 발생 시 최종 법적 책임은 의료기관장이 진다. 병원에서는 간호사 배치를 위한 근거를 문서로 만들어야 하고 교육·훈련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임강섭 복지부 간호정책과장은 “시범사업이 의료법보다 상위법인 보건의료기본법 조항에 따라 시행되기 때문에 법적 처벌에서 자유롭다”며 “앞으로 이 시범사업을 모니터링해 향후 제도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PA 간호사 제도화에 반대해왔던 대한의사협회(의협)는 “마구잡이로 던지는 무리한 발표가 대한민국 의료를 더욱 빠르게 몰락시킬 것이 자명하다”며 “정부는 의사가 해야할 일을 전공의가 없다는 이유로 PA 간호사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 양성화를 통해 해결하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이어 “제대로 자격도 갖추지 못한 PA에 의한 불법 의료행위가 양성화되면 의료인 면허 범위가 무너지면서 의료 현장은 불법과 저질 의료가 판치는 곳으로 변질될 것”이라며 “정부는 이제 더 이상 국민 건강을 위험에 빠트리는 무리한 정책 강행을 중단해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