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규제를 도입하거나 기존 규제를 변경시키는 것은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이렇게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행위가 정당한 근거를 가지고 있는가의 문제가 규제정책의 정당성의 입증의 문제인데 정책결정자들은 보통 이를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다.
그러나 규제 제도가 법적으로 다투어질 때에는 입증책임이 중요한 쟁점이 된다. 근래에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보건규제와 관련해 유명하게 된 미국 대법원의 판례는 명백히 그러한 입증책임은 규제자에게 있음을 판시한 바 있다. (Roman Catholic Diocese of Brooklyn vs. Cuomo 및 Tandon vs. Newsom 판결 등).
이처럼 규제의 정당성을 입증할 책임을 규제자에게 부담시키는 것은 전세계에서 보편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항고 소송에서 처분의 적법성에 대한 입증책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행정청에게 있다는 것이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규제의 입증책임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규제 자체에 대한 항고 소송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헌법소원에서는 사실 증명에 대해 직권주의가 채택되어 소송당사자들이 입증책임 문제를 의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헌법소원에서도 결국 입증이 곤란한 경우에 누구를 패소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규제제도를 정당화할 입증책임은 규제자에게 있다고 하여야 한다.
규제의 정당화 또는 입증을 위해 사용되는 것이 바로 규제영향분석 또는 입법영향분석이다. 구체적으로는 행정비용의 계산, 비용·편익분석 등 다양한 방법론이 존재한다. 이러한 방법론들에 있어서 공통적인 것은 새로운 규제를 도입함에 있어서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증거에 기반하여 규제 정책이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evidence-based policy-making).
과거에는 정책결정자들이 자신의 소신과 직관적 판단으로 정책결정을 하여 왔으나, 통계의 정확성이 제고되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장래예측이 어느 정도 가능해진 오늘날 정책결정이 증거나 데이터에 기반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이 선진국을 중심으로 확산되어 왔다.
규제영향분석 또는 입법영향분석은 바로 이러한 흐름에서 이루어지는 입법과 행정의 선진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행정부 차원에서는 규제영향분석제도가 도입되어 있으나 근래 정부 입법이 차지하는 비중이 현저히 떨어지고 대부분의 입법이 의원 입법으로 이뤄짐에 따라 국회차원의 규제개혁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하며 국회에서 입법영향분석이 도입되어야 한다는 점에 중론이 모아지고 있다.
집권 여당도 제22대 국회에서 입법영향분석을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를 제대로 실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행정부의 규제영향분석도 부실 시비가 오래 전부터 제기되어 왔다. 국회에서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오래 전부터 입법영향분석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나 이 제도를 실시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미흡하다.
보좌진만이 아니라 정책 결정자 가운데에도 전문가가 참여해 새로운 시스템 구축에 열성을 다하지 않으면 이것도 말만 요란한 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입법영향분석에 있어서의 다양한 각종 방법론의 타당영역과 한계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적절한 운용방식과 운용체제의 구축을 통해 국회에서의 규제개혁이 증거에 입각한 정책결정을 실현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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