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완성차 기업이 차량에 탑재할 배터리 개발·생산에 직접 뛰어들며 치열한 기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고성능 차량용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고 배터리 제조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며 시장 주도권을 확고히 하려는 것이다. 특히 전기차 시장에서 가격경쟁력 강화가 주요 화두로 자리 잡으면서 배터리 내재화를 위한 움직임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1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일본 도요타는 이달 말 배터리 합작사인 ‘프라임어스 EV 에너지(PEVE)’의 완전 자회사화에 나선다. 1996년 PEVE 설립 이후 약 28년 만이다. 도요타는 공동 출자사인 파나소닉의 PEVE 보유 지분(지분율 19.5%)을 모두 사들여 100% 자회사로 편입할 계획이다.
도요타는 완전 자회사로 거듭나는 PEVE를 통해 배터리 양산 체제를 대폭 강화한다. PEVE는 지금까지 도요타 하이브리드차량(HEV)용 배터리만을 생산해왔는데 앞으로 전기차(EV)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량(PHEV)용 배터리까지 생산할 예정이다. 배터리 생산능력을 끌어올려 친환경차에 대한 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취지다. 2030년까지 미국과 일본 등 배터리 공장의 생산능력을 연간 280GWh로 확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배터리 자체 개발에도 적극적이다. 앞으로 출시하는 도요타 전기차에 자사의 고성능 차세대 배터리를 탑재해 상품 경쟁력을 높이고 전기차 분야 ‘후발 주자’의 꼬리표를 떼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꿈의 배터리’로 꼽히는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는 이르면 2027년 출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10분 충전만으로도 1200㎞를 달릴 수 있고 현재 출시된 전기차보다 주행거리가 2.4배가량 길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 역시 배터리 내재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금까지는 전기차 성능과 안전·가격을 좌우하는 배터리 대부분을 배터리 제조사로부터 공급받았다면 앞으로는 직접 개발·양산한 배터리를 전기차에 탑재하는 것이다. 각 완성차 업체의 전기차에 최적화된 배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기차 가격의 40%를 차지하는 배터리 생산원가를 절감해 가격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중국의 비야디(BYD)가 대표적인 예다. 비야디는 배터리를 직접 조달하며 경쟁사 대비 저렴한 전기차로 시장 우위를 점하고 있다. 비야디는 지난해 4분기 52만 6409대의 전기차를 팔아 테슬라(48만 4507대)를 앞지르고 역대 처음으로 세계 1위 전기차 업체로 올라섰다.
현대차그룹은 올해 하반기 의왕연구소에 ‘차세대 배터리 연구동’을 열고 전고체 배터리 개발을 서두를 계획이다. 이곳은 단순 배터리 개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의 양산성을 검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2025년 전고체 배터리를 적용한 전기차를 시범 생산한 뒤 2030년부터 양산하는 것이 목표다.
현대차그룹은 10년간 배터리 분야에 총 9조 5000억 원을 투자한다. 배터리 성능과 안전성을 개선하고 가격 인하를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배터리 제조사와의 협업도 강화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출시한 싼타페 하이브리드차에는 SK온과 공동 개발한 배터리를 장착했다. 내년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적용을 위해 국내 배터리 업체와의 협업을 이어가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역시 2022년 자회사인 ‘파워코’ 설립을 시작으로 배터리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다. 파워코는 2030년까지 유럽 전역에서 연간 240GWh 규모의 배터리를 생산하는 셀 공장 6개를 짓기로 했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배터리를 폭스바겐 전기차뿐 아니라 다른 완성차 브랜드의 전기차에도 공급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