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 본격화와 함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와의 협력이 각 사 기술 경쟁력을 가르는 최대 변수로 떠오르고 잇다.
SK하이닉스가 이달 말부터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를 세계 최초로 양산해 엔비디아에 공급한다. SK하이닉스는 이번 납품으로 HBM 분야에서 삼성전자·마이크론테크놀로지 등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독주를 예고했다.
19일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세대 HBM(HBM3)을 업계에서 처음으로 양산한 데 이어 HBM3E도 가장 먼저 고객사에 공급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HBM3E 개발 완료를 알린 지 7개월 만이다.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HBM3는 엔비디아의 최상위급 인공지능(AI) 그래픽처리장치(GPU) H200에 탑재될 예정이다. AI GPU에 필수 탑재되는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아 일반 D램 대비 데이터 처리 속도를 대폭 향상시켰다. HBM 5세대인 HBM3E는 HBM3의 성능과 용량을 개선한 제품이다.
SK하이닉스의 HBM3E 대량 양산은 삼성전자·마이크론테크놀로지보다 한 박자 빨랐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2월 HBM3E를 엔비디아에 납품한다는 소식을 업계 최초로 발표한 바 있다. 하지만 이는 엔비디아 H200에 실착되기 전 마지막 퀄(승인) 테스트를 위한 과정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1월부터 엔비디아의 최종 테스트용 HBM3E 양산을 시작한 뒤 인증까지 끝내고 제품 양산에 돌입했다.
SK하이닉스는 HBM3E 납품을 통해 이 분야의 1위 자리를 공고하게 사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HBM 매출은 전체 D램 시장 매출의 20%를 웃돌 것으로 전망된다. HBM3 분야에서는 SK하이닉스가 엔비디아에 독점 공급하면서 90% 이상의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류성수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축적해온 성공적인 HBM 사업 경험을 토대로 고객과의 관계를 탄탄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업계 최초로 개발한 12단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3E) 실물을 대중에 처음으로 공개했다. 12단의 HBM3E를 엔비디아 등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들에 공급해 HBM 분야를 공략하겠다는 포석이 깔렸다.
18일(현지 시간) 삼성전자는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열린 엔비디아의 연례 개발자 콘퍼런스 ‘GTC 2024’ 행사장에서 12단 HBM3E를 전시했다. 삼성전자는 2월 말 12단 HBM3E 제품 개발 소식을 발표했지만 대중에 실물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이 전시관에서 12단 HBM3E의 데이터 처리 속도는 1초당 최대 1280GB(기가바이트)이며 현존 최대 용량인 36GB을 제공한다고 소개했다. 성능과 용량 모두 전작인 8단 4세대 HBM3 제품보다 50% 이상 개선됐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수직으로 연결해 데이터 처리 속도를 끌어올린 차세대 메모리다. 그동안 세계 D램 시장 1위 삼성전자는 HBM 시장 선점 경쟁에서 2위 SK하이닉스에 밀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회사인 엔비디아에 HBM 제품을 아직 납품하지 않고 있는 데다 삼성전자가 활용하는 HBM 공정인 열압착 비전도성접착필름(TC-NCF) 기술이 SK하이닉스의 매스리플로우 몰디드언더필(MR-MUF) 공정에 비해 효율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아온 탓이다.
삼성전자는 12단 HBM3E 선점으로 이 시장에서 역전을 노린다는 전략을 세웠다. AI 반도체 1위 회사인 엔비디아의 최대 규모 행사에서 이 제품을 전시하며 납품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또한 삼성전자는 올해 HBM 생산능력을 지난해보다 2.5배 끌어올리면서 SK하이닉스의 생산능력을 앞지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