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요즘 '청첩장' 보기 힘들더니…'혼인건수', 한 세대 만에 '반토막'[뒷북경제]

지난해 혼인 19.4만건…코로나 기저효과로 1%증가

10건 중 1건 국제결혼…한동안 20만건 회복 어려워

출생아수 증가에도 빨간불…일각서 “혼외출산이 해법”

1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한 시민이 웨딩드레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19일 서울 마포구 아현동 웨딩거리에서 한 시민이 웨딩드레스 앞을 지나고 있다. 연합뉴스




우리나라의 지난해 혼인건수는 19만 3657건으로 3년 연속 20만 건을 밑돌았습니다. 1997년 혼인 건수가 38만 8960건이니 26년만에 반토막 나버린 셈입니다. 혼인건수는 2015년(30만 2828건)까지만 해도 30만건대를 유지했지만 8년만에 36% 급감했습니다. 혼인건수가 출생의 선행지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저출생 대책이 나온다고 해도 한동안은 출생아 감소가 불가피하다는 어두운 전망이 나옵니다.



통계청은 이같은 내용을 담은 '2023년 혼인·이혼 통계’를 발표했습니다. 2023년 혼인건수 자체는 사실 소폭 늘었습니다. 19만 1690쌍이 결혼한 2022년에 비해 1967건(약1.0%) 증가했습니다. 연간 혼인건수가 증가한 것은 2011년 이후 처음입니다.

12년만의 증가세에도 불구하고 혼인건수가 다시 20만건을 넘어서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전체 수치가 늘어난 것은 코로나19 종료로 인한 기저효과와 국제결혼 증가 덕으로 풀이되기 때문입니다. 팬데믹 당시 거리두기 조치로 결혼식장 이용이 어려워지자 많은 커플들이 결혼식을 미뤘습니다. 혼인건수 20만건이 붕괴된 것도 이때입니다. 2019년 23만 9159쌍의 커플이 결혼했지만 2020년에는 21만 3502건으로 일 년만에 10.7% 감소합니다. 혼인건수가 두자릿수 비율로 감소한 것은 1997년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습니다. 이후 팬데믹이 장기화되면서 2021년에는 19만 2502건(-9.8%)이 됩니다. 2022년 혼인건수는 19만 1690건이었습니다. 팬데믹이 감소세를 가속한 측면은 있지만 이미 혼인건수는 2012년 이후 10년 연속 감소 중인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중 거리두기 조치가 해제되면서 혼인건수가 증가세로 전환합니다.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 사이 혼인건수가 뚜렷하게 증가했습니다. 혼인률이 높은 30대 초반 인구가 최근 증가한 것도 혼인건수가 늘어나는데 일조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문제는 전염병으로 인해 ‘미뤄졌던 결혼’들이 이제 거의 다 소화됐다는 점입니다. 실제로 2023년 월별 혼인건수를 보면 7월(-5.3%), 8월(-7.0%), 9월(12.3%), 11월(-4.4%), 12월(-11.6%) 등 마이너스 흐름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이같은 흐름은 올해 상반기에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외국인과의 결혼은 늘었습니다. 코로나19 기간인 2021년 1만 3102건까지 줄었던 국제 결혼은 2022년 27.2%, 2023년 18.3% 급등해 1만 9700건이 됐습니다. 이같은 추세는 한동안 이어질 전망이어서 올해 외국인과의 혼인건수는 2만 건을 무난히 상회할 전망입니다. 이렇다보니 전체 혼인 중에서 국제결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10.2%로 2010년 이후 13년만에 두자릿수가 됐습니다. 사실 상대적으로 급증한 외국인과의 혼인을 제외하고 내국인 사이의 결혼만 살펴보면 연간 혼인 건수는 2022년 17만 5024건에서 2023년 17만 3940건으로 약 1100건 가량 감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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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 수 감소가 문제가 되는 것은 통상 결혼이 출산의 사전단계로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혼인외 출산 비율이 3%가 안되기 때문에 혼인건수의 증감이 출생아 수 증감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결혼 후 평균 2.5년이 지나 첫째 아이를 갖는 것으로 알려졌으니 혼인건수 변화도 그정도 시차를 두고 출생아수 변화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됩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일각에서는 우리나라도 ‘혼외 출산’에 대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청년 세대가 혼인을 더이상 필수로 받아들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 ‘혼인 후 출산’ 방식만 고집할 수는 없다는 주장입니다.

실제로 저출생 문제를 먼저 마주한 많은 선진국들이 혼외 출산에서 해법을 찾았습니다. 유럽연합(EU) 27개국 중 가장 높은 합계출산율을 자랑하는 프랑스의 경우 출생아 10명 중 6명 이상이 혼외 출산입니다. 이 비중은 2002년 45.2%에서 2012년에는 56.7%, 2022년 63.8% 등으로 계속 늘고 있습니다. 그 덕에 프랑스의 2023년 합계출산율은 1.8에 달합니다. 이와 비슷한 합계출산율(1.82)을 보이는 멕시코의 경우 혼외 출생비율이 70.4%입니다.

사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평균 혼외 출산 비율은 2020년 기준 41.9%나 됩니다. 미국의 혼외 출산 비중도 이와 유사한 40.5%입니다. 김영철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에 따르면 혼외 출산 비율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합계출산율이 0.0075명 높아집니다. 우리나라의 혼외 출산 비율이 OECD 평균 만큼만 높아지면 합계출산율이 0.3명 높아져 1.0을 넘길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저명한 인구학자인 데이비드 콜먼 옥스퍼드대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를 찾아 “출산율이 1.6을 넘는 나라 중 혼외 출산 비율이 30% 미만인 나라는 한 곳도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렇다보니 혼외 출산을 제도권으로 편입하는 정책·인식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혼외 출산을 제도적·사회적으로 차별하지 않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청년 세대의 인식은 이미 변하고 있습니다. 통계청의 사회 조사에 따르면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는 질문에 대해 10대와 20대의 44.1%, 39.0%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혼전 동거에 대한 우리 사회의 긍정적인 반응도 45.9%에서 65.2%로 증가했습니다.

제도는 아직 속도가 느립니다. 건강가족기본법은 혼인이나 혈연으로 연결돼야만 ‘정상 가족’으로 봅니다. 미혼모에게 주어지는 다양한 정책 지원을 미혼부가 받지 못합니다.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혼외 출생’이 명시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사실혼 상태인 경우 신혼부부에게 주어지는 정책 혜택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물론 출산휴가·가족돌봄휴가와 같은 제도를 사용하는데도 상당한 불편함이 따릅니다.


세종=주재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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