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임무 위배 등 모호한 개념에 엇갈리는 판결에도 70년 변화 없는 ‘배임죄’[안현덕 전문기자의 LawStory]

신중한 의사 결정·방만 경영 억제 등 긍정적이나

예측가능성↓…경영 위축 우려에 개정 논의 ‘필요’

같은 행위도 엇갈린 판결…무죄율 일반 사건 2배

의도있는 목적범 아닌 위험상태 야기만해도 범죄

日목적 명시…독일 의무 등 구성요건 상세히 담아

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권욱 기자지난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이 발표를 경청하고 있다. 권욱 기자




“형법상 배임죄는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의사 결정을 신중하게 하고, 무책임한 방만 경영을 억제하는 등 긍정적 효과로 있습니다. 다만 처벌 기준의 모호함으로 기업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려 자칫 정상적인 경영마저 위축시킬 수 있는 만큼 개정 논의 등 공론화가 필요합니다.”



고등법원 판사 출신의 법무법인 세종의 하태헌 파트너 변호사의 말이다. 그는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이 지난 19일 공동으로 개최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 세미나에서 “배임은 범죄 구성 요건이 모호하기 때문에 1·2심 판단이 가장 많이 다르게 나타나는 혐의”라며 “그만큼 무죄율도 높다”고 지적했다. 배임죄는 경영 판단의 실패 등을 두고, 그동안 법적 판단이 크게 엇갈리는 혐의로 꼽힌다. 동일한 유형의 계열회사 자금 지원 등 사건인데도 1·2·3심의 판단이 크게 엇갈릴 정도다. 게다가 범죄 구성 요소가 불분명한 탓에 일반 사건보다 무죄율도 두 배가량 높다. 2021년 사법연감에 따르면, 전체 사건의 무죄율은 3.04%다. 반면 횡령·배임죄의 경우 7.3%를 기록했다. 각 기업 법무실·준법경영실·법무지원국 등 관계자 100여명이 참여한 세미나는 배임죄에 대한 바른 변화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자리다. 배임죄의 경우 1953년 제정·시행된 이후 경제 발전과 더불어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다. 하지만 그동안 법률 개정은 지난 1995년 환율 단위 교체 등 단 한 차례에 불과했다. 배임죄를 두고 ‘이현령 비현령(耳懸鈴 鼻懸鈴)’이라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면서 법률 개정 등에 대한 목소리가 한층 커지고 있는 이유다.

이날 세미나에서 하 변호사가 예의 주시한 건 △임무 위배 행위 △타인의 의사무 처리자 △재산상 이익 취득·손해 등 범죄 구성 요소가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이다. 이는 ‘법률이 처벌하고자 하는 행위가 무엇이고, 형벌이 어떠한 것인지 누구나 예견할 수 있고, 이에 따라 본인 행위를 결정할 수 있도록 구성 요건을 명확하게 규정해야 한다’는 점을 뜻한다. 형법상 절도죄가 ‘타인의 재물을 절취한 자’로 명시하는 바와 같이 범죄행위가 명확히 정해져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세미나에서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배임죄의 모호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 기자하태헌 법무법인 세종 파트너 변호사 19일 서울 광화문 D타워에 위치한 법무법인(유) 세종에서 '70년 고인물 '배임'···변화할 때'를 주제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 법무법인 세종 공동세미나에서 '형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배임죄의 모호성'을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권욱 기자



하 변호사는 “임무 위배라는 범죄 구성 요소가 모호해 법원의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릴 수 있다”며 근거로는 앞선 계열회사 자금 지원에 대한 두 판례를 제시했다. 지난 2017년 11월 9일 선고된 대법원 판례에서는 해당 행위가 ‘합리적인 경영 판단의 재량 범위 내에서 행해져 본인에게 손해를 가한다는 인식 하의 의도적 행위라고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경영 판단이라는 점에서 배임죄를 인정치 않은 것이다. 반면 2009년 7월 23일 판례에서는 ‘설령 동반 부도 사태를 가져온다고 해도 자금 지원을 하면 안 된다’며 배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계열회사에 대한 동일한 자금 지원이었으나 법원의 판단은 180도 달랐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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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변호사는 “판례상 주주 동의를 얻거나, 이사회의 결의가 있었더라도 배임죄라는 사법 리스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며 “타인의 사무 처리라는 범죄 구성 요소에 대해 법원이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한다면 배임죄 적용 범위는 물론 처벌 가능성도 높아지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강조했다. 신의칙은 법률관계 당사자가 상대방의 이익을 배려해야 하고,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내용 또는 방법으로 권리 행사를 해서는 안 된다’는 근대사법 원칙이다.

하 변호사는 형법상 배임죄가 객관적 사실 외에 목적·의도가 있을 경우를 뜻하는 목적범이 아닌 위험범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위험범이란 보호 법익에 대한 위험 상태의 야기만으로 구성 요건이 충족되는 범죄다. 외국의 경우 특정한 기준에 따라 목적범일 경우 죄가 있다고 인정하고 있으나 국내 법체계는 다르다는 것. 그가 ‘사후확증편향(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심리·선입견)에 따라 실패한 경영상 판단을 배임으로 인정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 이유다. 실제 일본(형법 제247조)의 경우 배임죄를 ‘본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임무에 위배한 행위를 하고, 본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가할 때’라고 명시한다. 독일(형법 266조)은 ‘법률·관청의 위임, 법률 행위 또는 신용 관계 등에 의해 부과되는 타인의 재산상 이익을 꾀해야 할 의무에 위반하고, 이로 인해 재산상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자에게 손해를 가한 경우’라고 법률상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 주식법 제93조에는 ‘이사가 통상적이고 성실한 주의를 다하였는가의 여부에 관해 의문이 있을 때에는 거증책임을 진다’는 부분을 담고 있다. 미국은 배임죄 규정이 없다. 대신 사기(Fraud) 또는 민사상 의무(Fiduciary Duty)·손해 배상으로 규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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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덕 법조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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