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당국이 농협의 특수한 지배구조를 속속들이 들여다보겠다며 압박에 나서고 있다. 최근 발생한 농협은행의 100억 원대 배임 사고와 NH투자증권의 대표이사 인선 과정에서의 갈등 등이 모두 농협과 농협금융지주의 특수한 지배구조 때문이라고 판단해서다. 금융감독원은 농협에 예외적으로 적용됐던 ‘금산분리 원칙’은 물론 농업지원사업비까지 살펴볼 여지를 남겨뒀다. 금융지주사들의 지배구조 로드맵 제출 기한인 이달 말이 향후 금융감독원과 농협 간 갈등의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감원은 최근 농협금융과 농협은행·NH투자증권에 대한 수시 검사와 정기 검사를 진행하는 등 농협의 지배구조를 다각도로 살펴보고 있다. 금감원이 농협금융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보는 것은 다른 금융그룹들과는 다른 특수성 때문이다. 농협중앙회는 2012년부터 100% 출자하는 방식으로 농협금융지주와 농협경제지주가 나눠지는 ‘신경분리’를 실행했다. 농협의 신경분리는 산업자본(기업)이 은행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금산분리’ 취지와도 같다. 하지만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상 금융지주와 그 자회사에 대해 중앙회의 관리·감독 권한을 인정하고 있어 중앙회의 금융지주 인사권·경영권 개입 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는 지적도 줄곧 제기됐다.
금감원은 이런 구조적 특수성이 최근 발생한 배임 사고와 NH투자증권의 대표 인선 갈등을 촉발시켰다고 보고 있다. 비금융기관인 농협중앙회가 전문성이 요구되는 금융사에 과도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금융 사고까지 유발했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금융 분야는 전문성을 갖춘 독립 경영이 필요하지만 농협에서는 인사 개입 논란이 수차례 불거졌고 경영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경우가 여러 차례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산업자본의 금융사 소유를 금지한 ‘금산분리 원칙’에서 농협의 지배구조를 들여다봐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복현 금감원장은 21일 기자들과 만나 “자칫 잘못 운영하면 금산분리의 원칙 내지는 내부통제와 관련한 합리적인 지배구조법상 규율 체계가 흔들릴 여지가 조금 더 있어 잘 챙겨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금은 농업협동조합법에 따라 농협중앙회가 농협금융지주 자회사 경영까지 간섭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금융제도의 근간이 되는 금산분리 원칙을 고려하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로 읽힌다. 일각에서는 이 원장의 금산분리 원칙 언급이 농협금융지주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보장하는 법 개정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금감원은 과거 명칭 사용료로 불리던 ‘농업지원사업비’도 들여다보고 있다. 농협중앙회는 교육 지원 사업 재원 마련 등을 위해 해마다 수천억 원가량의 농업지원사업비를 농협금융으로부터 걷고 있다. 지난해에는 4927억 원을 걷었는데 순이익(2조 5774억 원)의 20%가량에 달한다. 농협중앙회는 조합원인 농민들을 비롯한 농업·농촌 지원이 목적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금감원은 농협은행 등 농협 계열 금융사는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만큼 무리하게 돈을 걷어가 건전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단 이달 말이 변곡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달 말까지 NH농협금융지주를 포함한 국내 금융지주들은 금융 당국에 지배구조와 관련한 로드맵을 제출해야 한다. 금감원은 농협지주가 제출할 로드맵에 어떤 내용이 담길지 주목하고 있다. 금감원이 지적했던 부분에 대한 가시적인 개선 내용이 담기지 않는다면 농협에 대한 당국의 압박은 새 국면을 맞이할 가능성도 크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금감원장이 특정 금융사만 지정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다른 금융지주들처럼 가시적인 변화를 보이지 않는다면 농협과의 갈등은 더 확대될 수도 있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