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을 덜 쓰면 좋다는 건 이제 상식입니다. 탄소배출을 줄이고 기후위기를 막을 방법이자, 미세플라스틱이 생태계 곳곳에 파고드는 것을 이제라도 막을 방법이기 때문입니다(다만 미세플라스틱이 정확히 사람이나 동식물에 어떤 악영향을 미치는지는 아직 연구 단계입니다).
이러한 '상식'을 위해 상상 같은 플라스틱 규제를 도입한 나라들이 이제 꽤 됩니다. 잘 뜯어지지 않는 페트병 라벨에서 시작(1편)해 플라스틱 소비를 줄일 방안들(2편)을 살펴봤다면, 이번에는 가장 강력한 해법인 정부 규제를 다뤄봅니다.
단계별 플라스틱 감축법
플라스틱 관리는 크게 생산, 소비, 분리배출과 재활용 단계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생산 단계에서는 재활용 소재나 바이오 베이스 플라스틱 등을 쓰도록 유도해 석유 사용량과 온실가스 배출을 줄입니다. 또 플라스틱 용기 같은 제품을 생산할 때 재활용이 쉬운 제품들을 생산하도록 합니다. 때로는 플라스틱 자체에 세금을 물리기도 합니다.
소비 단계에선 특정 제품 또는 용도의 플라스틱 포장재를 규제하거나, 플라스틱을 덜 쓰면 인센티브를 주는 정책이 있습니다. 그리고 분리배출과 재활용 단계에선 체계적인 수거 시스템, 재활용이 되는 플라스틱들을 잘 선별하는 시스템, 그리고 잘 재활용해서 쓸 수 있는 기술과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합니다.
막연하게 느껴지지만 실제 사례는 이미 차고 넘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유럽연합(EU)은 이미 2021년부터 일회용 수저, 접시, 빨대, 컵과 배달용 포장재, 면봉 등의 사용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신 음식을 포장할 때 다회용기나 다회용컵에 담아준다거나 하는 식입니다. 뉴질랜드는 2019년부터 일회용 봉투와 쇼핑백 사용 금지로 시작해 2025년에는 일회용 플라스틱 사용을 전면 금지할 예정입니다. 일회용 빨대의 경우 장애인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필요한 이들에겐 허용됩니다.
미국도 국립공원, 공유지 등을 중심으로 2022년부터 플라스틱 물병 판매 금지, 일회용 플라스틱 판매 금지 등을 시행했습니다. 아랍에미리트(UAE)도 일회용 비닐봉투에 이어 올해부터는 일회용 스티로폼 컵·접시·용기 사용이 제한됩니다.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철회한 우리나라와는 대조적인 사례들입니다.
▶재활용을 쉽게 만드는 기업의 아이디어와 정책이 만난 사례도 있습니다. 유럽은 올해 7월부터 '일체형 병뚜껑'을 의무화합니다. 의무화를 앞두고 이미 탄산음료도, 생수도 이런 페트병에 담겨서 팔리고 있습니다. 조그만 페트병 뚜껑을 페트병에 닫아둔 채로 분리배출하면 재활용할 수 있지만, 따로 버리면 선별 후 재활용이 되기 어렵기 때문(수많은 쓰레기 중에서 병뚜껑을 일일이 골라낼 인력을 두기 쉽지 않습니다)입니다.
게다가 조그만 병뚜껑을 먹이로 착각하고 동물들이 먹는 경우도 많습니다. 지난 2017년 공개된 크리스 조던 감독의 다큐멘터리, '알바트로스'는 뱃속에 병뚜껑과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이 가득한 채 죽은 알바트로스 새의 모습을 담아 전세계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안겨준 바 있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도 일체형 병뚜껑이 있습니다. 서울시가 수돗물 홍보를 위해 출시한 '아리수'입니다. 고품질 재생원료로 쓸 수 있도록 제조일자를 페트병에 잉크로 쓰지 않고 레이저로 새기는 방식을 썼다는 점, 병뚜껑에 염료를 쓰지 않는다는 점, 정부의 일회용품 감량 정책에 따라 2019년부터는 제품 자체를 단수·재난 지역에만 제한적으로 공급하고 있다는 점도 매우 훌륭합니다.
그리고 '하은캡'이라는 국내 기업은 일체형 병뚜껑과 관련해 미국, 중국, EU 등지에서 특허 등록을 완료했는데 특히 유럽 시장에 진출했거나 진출하려는 생수·음료류 기업들의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합니다.
점점 강화되는 규제, 하지만…
▶독일은 2025년부터 페트병 생산 과정에서 재활용원료의 비율을 25% 이상으로, 2030년부터는 30% 이상으로 정했습니다. 독일만 이런 것이 아니다보니 코카콜라는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에서 모든 음료에 100% 재생원료로 만든 페트병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2023년부터 연 1만톤 이상 페트병 생산 업체에 3%의 재생원료 사용 의무(2030년까지 30% 이상으로 확대 예정)를 부과했는데, 의무를 어겼을 때의 페널티가 없습니다.
한편 재생 플라스틱 사용이 늘다 보니 요즘엔 오히려 재활용할 수 있는 품질의 폐페트병, 폐플라스틱을 구하기가 어려워졌습니다.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시급합니다.
▶아예 '플라스틱세'도 있습니다. EU는 재활용되지 않는 플라스틱 폐기물 1㎏당 세금 0.8유로(약 1160원)을 부과해 애초에 플라스틱을 덜 쓰도록, 최대한 재활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바이오 베이스 플라스틱은 톱밥, 옥수숫대, 해조류 같은 물질로 만든 플라스틱입니다. 기본적으로 석유를 쓰지 않아 온실가스 배출이 확 줄어들고, 일반 플라스틱과 똑같이 분리배출·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부는 2021년 말에 2050년까지 석유계 플라스틱 전체를 바이오 플라스틱으로 대체한다는 목표를 발표했습니다. 인증받은 바이오플라스틱에 대해 폐기물 부담금 면제 같은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희망적입니다. 그러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22년 발표한 글로벌 플라스틱 전망에 따르면 2060년 전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은 12억3000만톤으로 2019년(4억6000만톤) 대비 3배에 달할 전망입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폐플라스틱은 3억5000만톤에서 10억1000만톤으로, 해양 생태계로 유출되는 양은 2200만톤에서 4400만톤으로 늘어날 전망이고요.
참고로 우리나라의 플라스틱 폐기물 중 32.6%는 소각됩니다. 재활용하거나 태워서 열에너지로 이용하지 않고 오히려 연료를 써서 없애버리는 비율이 이 정도나 됩니다. 그러니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잘 재활용할 수 있도록 서둘러야겠습니다.